고3 여름방학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 쓰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학생부만 펼쳐놓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학생부를 쓰는 건 정말 막막한 일이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써야 할지, 이 단어를 쓰는 게 맞는 건지 등 트집을 잡자면 트집잡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부족해 보이는 학생부를 어떻게든 자기소개서로 만회해야 할 것 같은데 자기소개서가 오히려 내 학생부를 깎아먹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부라는 제품의 설명서
쉽게 설명하면 자기소개서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설명서'이다. "내 학생부를 이렇게 읽어 달라"라는 내용의 글이다. 우리는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그 제품의 우수함을 보고 구매하지 제품 설명서의 화려함을 보고 구매하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소개서에 대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설명서이기 때문에 좋은 설명서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면 좋다. 우리가 특정 제품을 구매할 때 설명서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내가 이 제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이 제품이 다른 상품과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인지, 그래서 경쟁상품이 아니라 꼭 이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물론 나의 학생부에 대한 자신감은 있어야겠지만 허위 과장광고로 학생부를 왜곡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문장이나 낱말에 아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오타 등을 수정하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는 것과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자기소개서는 입학사정관이 학생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활용되는 자료로 자기소개서 그 자체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즉 자기소개서는 학생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이며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에 배점을 부여해 평가하지는 않는다."
- 교육부, 「학생부종합전형 100문 100답」 中
#자기소개서,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다
시중에 많은 합격자들의 자기소개서가 '모범답안'같은 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유사도검사때문에 그 자기소개서를 그대로 베끼지는 않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런 합격자들의 자기소개서에서 영감을 얻는다.
일정부분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을 구성하는 차원에서의 영향일 뿐 입시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두 자기소개서가 기반하는 학생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A사의 핸드폰 설명서를 작성할 때 S사의 핸드폰 설명서를 보는 것 정도의 참고가 가능할 것이다. 두 핸드폰이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다른 것처럼 나도 그 자기소개서의 '모범답안'과는 강조하고 싶은 또 강조해야 하는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소개서에 '정답'은 없다. 일반적인 규격과 양식은 존재할지 몰라도, 내용의 측면에서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기소개서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오답'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는 존재한다.
여러 가지 오답이 있겠지만 가장 많은 학생들이 범하는 첫 번째는 문자 그대로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자기소개서이다. 대학에서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부에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담긴 항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생님이라는 제3자의 눈으로 기록된 특정한 '사실'의 나열이다. 학생부를 보고 입학사정관은 '이 학생이 이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까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 진정 의미를 갖는 때는 그 주체가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후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이고 느낌이다. 즉 학생부에 나열된 사실이 지원자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는지를 지원자의 입장에서 듣고자 하는 것이 자기소개서의 기본적인 취지다.
#좋은 자기소개서의 시작은 소재 선정부터
그래서 자기소개서의 첨삭은 때로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첨삭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뼈대는 자신의 언어로 구성된 자신의 느낌이어야 한다. 입학사정관은 지원자의 학생부를 통해 이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 확인한 다음에, 이 활동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궁금해 한다. 나아가서는 '그래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를 궁금해한다. 자기소개서는 이런 개별경험의 구체성을 표현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자기소개서는 소재를 선정하는 것부터 어느 정도의 성패가 갈린다. 무언가 화려해보이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주체적으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했던 일이 아니거나 남의 손에 이끌려서 한 경험들은 대부분 이렇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무언가 '튀어 보이는' 활동을 자기소개서에 작성하려고 한다. 수많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다는 욕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입학사정관이 원하는 것은 경험 그 자체의 특별함이 아니라 그 경험의 전후에 존재하는 '나'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의 소재는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남긴' 경험이어야 한다. 그 경험은 아주 소소한 것이어도 괜찮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특별한 경험을 해봤자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해 보았을까. 그것은 평범한 동아리활동 중이어도 좋고, 봉사활동 중이어도 좋고, 수행평가 중이어도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원해서 한 활동이고, 그 활동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으며, 그 활동의 결과가 그 다음 활동의 목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다.
이 모두를 충족할 수 없어도 괜찮다. 남의 손에 이끌려서 했던 경험이었어도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느낌을 남길 수 있어 자신의 다음 경험의 발판이 된 활동이라면 충분히 좋다. 또는 자신의 학생부에서 드러난 나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며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켰던 활동이어도 좋다. 선생님들이 기재하는 학생부는 때로 그 표현이 너무 압축적이어서 구체화나 해명이 필요한 문장일 수 있다. 예를 들어 "OO과목 발표에서 치밀한 분석으로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 큰 호응을 받았음"이라는 학생부 기재 내역은 이 자체로는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치밀한 분석은 무엇이었고 그래서 얻어낸 생산적인 결론이 무엇이었고, 어떤 점 때문에 큰 호응을 받았는지를 자기소개서를 통해 보충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내가 보충할 말이 많은 활동인 경우 자기소개서를 쓰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당장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3학년 학생들은 그래서 자신의 학생부를 복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억지로 했던 활동들이다. 여기서 어떤 좋은 이력을 남겼더라도 이런 활동은 우선 배제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는 각 활동을 했던 시기에 남겼던 모든 사료를 샅샅이 긁어모아야 한다. 일기장이나 플래너 등이 있으면 가장 좋고, 보고서나 독후감, 그 활동 당시에 했던 SNS 까지도 뒤져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활동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래서 학생부에 기록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렇게 구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나의 활동들을 선별했다면 그 후에 자기소개서 문항을 고민하면서 줄글로 작성하면 된다. 많은 학생들은 문항에 맞게 소재를 선별하려 하는데 소재를 우선 선별한 다음 각각의 소재에 어울리는 문항들을 배정하는 것이 훨씬 작성하기가 매끄러울 것이다.
#좋은 자기소개서를 위한 기록의 습관
1, 2학년 학생들은 벌써부터 자기소개서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활동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분량이든 자신만의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나의 느낌과 감정과 고민과 학생부에 표현되지 않는 그 활동과 관계된 모든 것이어야 한다.
멋드러진 말로 표현하자면 학생부는 선생님이라는 사관(史官)의 기록이고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역사가의 역사서이다. 역사서를 쓰기 위해서는 나만의 사관(史觀)이 있어야 한다. 사관은 모든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는 그 역사가의 의미를 말한다. 이것이 입시전문가들이 말하는 학생부의 '일관성·연계성' 같은 것들이다. 나의 사관을 구축하기 위해선 그 수많은 사실들을 고민하며 곱씹는 일이 필요하다. 기록의 습관으로 나의 활동을 정리하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후에 내 3년간의 역사에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고민하는 최소한의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구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