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에서 에이즈까지
'온고지신' 대처법 모색
1946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만명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장티푸스와 이질로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전쟁기인 1951년에는 장티푸스가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58년에는 일본 뇌염으로 2000명이 사망했다. 지금은 과거 흔했던 감염병이 크게 줄었지만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다.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을 겪으며 감염병이 언제든 우리 안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제주제일고와 부산대를 졸업한 감염병 전문가인 부산대 의학과 장철훈 교수가 번역한 어윈 W. 셔먼의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은 세계사적 흐름에서 그 역사를 살핀 책이다. 질병에 맞서온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을 '온고지신'해 감염병이라는 '천벌'을 오늘날 어떻게 헤쳐갈 것인지 제시했다.
저자가 꼽은 12가지 질병은 14세기 흑사병에서 현대의 에이즈까지 이른다. 역사의 줄기를 바꿨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정표가 되었던 공통점을 지녔다.
포르피린증과 혈우병은 영국·스페인·독일·러시아·미국의 정치사를 흔들었다. 감자마름병은 대규모 이민을 불러왔다. 콜레라는 위생 조치와 환자 간호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경구 수분요법 개발을 촉진시켰다. 천연두는 백신 개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박멸되었고 흑사병은 검역 조치의 중요성을 알렸다. 매독은 항균화학요법, 결핵은 약독화 백신 개발로 이어졌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은 매개 곤충을 통제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인플루엔자와 HIV/에이즈는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질병의 현실을 드러낸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2019년 10대 건강 위협 요인 중 여섯 개는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등 감염병이었다. 희망이 없지는 않다. 질병의 역사를 통해 박멸은 불가능해도 통제는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2007년 미국에서 출판된 도서로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한 장철훈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질병 통제를 위해 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성숙한 의식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핵 관련 연구로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장 교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신기술개발단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임상미생물학회 이사장, 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있다. 부산대출판문화원. 1만8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