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4)스페인 바르셀로나

[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4)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 2위 관광대국도 오버투어리즘 해법 찾기 분주
  • 입력 : 2019. 10.29(화)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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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몰리는 명소마다 관광객·관광버스 진입 통제
부동산 가격 급등·치안 불안·불법 숙박에 골머리
"관광세는 관리 비용… 관광객 수 통제 목적 아냐"

스페인은 프랑스에 이은 세계 2위의 관광대국이다. 지난 2017년 기준으로 스페인을 다녀간 해외 관광객은 무려 8200만명에 달했다. 스페인 내 여러 도시 중 관광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바르셀로나이다. 1990년 한해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350만명이었던 바르셀로나는 1992년 하계올림픽을 거치며 급성장 해 지금은 연간 3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가 아침부터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상민기자

이중 바르셀로나에서 숙박하는 관광객은 1700여만명으로, 바르셀로나 인구(160만명)의 10배를 넘는다.

▶인파 몰리는 명소마다 통제=10월 1일 오전 10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는 아침부터 활력이 넘쳤다.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바닷가까지 1.2㎞에 이르는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다. 람블라 거리에는 박물관, 행위 예술가, 오래된 건축물 등 많은 볼거리와 커피숍, 레스토랑, 의류매장 등 수많은 상점이 즐비해 매일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하루 30만명이 찾는 유럽 최대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15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 입장이 금지된다.

람블라 거리에는 관광객과 시민이 다니는 도보를 중심축으로 도로 양 옆에 차로가 조성돼 있다. 차로는 도보에 비해 그 폭이 5분의 1도 안됐다. 아침부터 거리는 수천명의 인파로 넘실거렸지만, 차로에는 간간이 택시와 버스 수 대만 오갈 뿐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인파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관광객 대다수는 주민이 이용하는 일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에 오거나 람블라 거리로부터 약 500m 떨어진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서 관광버스를 세우고 걸어서 왔다. 바르셀로나시 당국은 람블라 거리엔 관광버스가 다닐 수 없게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관광버스는 일찌감치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일반 버스가 다니는 맨 바깥쪽 차로에 진입하지 못한 채 안쪽 차로에서 운행하고 있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관광버스(사진 오른쪽)는 일반 버스(사진 왼쪽)가 다니는 맨 바깥쪽 차로에 진입하지 못하고 안쪽 차로에서 운행해야 한다. 또 관광버스는 람블라 거리 진입이 금지된다.

시 당국은 관광버스가 주차할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다만 정차 허용 시간은 구역별로 다르다. 관광버스는 정해진 주차 구역에서 대기했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관광객을 태우러 다시 돌아오는 방식으로 운행했다.

시 당국은 이런 차량 통제 정책을 람블라 거리를 포함해 관광객이 몰리는 주요 관광지에서 시행하고 있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최고 걸작인 성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주변에서는 관광버스뿐만 아니라 일반 차량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성가족성당은 밖에서 보는 관광객이 1500만명, 돈을 내고 성당을 관람하는 입장객이 300만명에 이르는 관광 명소로 최근까지만 해도 차량 진입이 허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관광객과 관광버스로 인해 교통 혼잡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잇따르자 시 당국은 지난 2017년부터 성가족성당 입구 주변엔 차량을 세우지 못하게 아예 대형 화분으로 진입로를 막았다.

관광객 입장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람블라 거리에 있는 유럽 최대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15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 입장이 금지된다. 하루에만 30만명이 다녀가다보니 지역 주민들로부터 '관광객에 치어 장을 볼 수 없다'는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과 달리 관광객 통제 정책은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람블라 거리에 비치된 쓰레기통.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54년째 향신료와 마늘을 팔고 있는 카르멘(64)씨는 "시가 특정 시간에 한해 단체 관광객의 입장을 막고 있지만 생각만큼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며 "단체 관광객을 인솔한 여행 가이드가 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관광객들에게 3인 이상 모이지 말고 뿔뿔이 흩어져 시장을 다니라고 하면 단속할 방법이 없다. 주민 민원이 제기되자 형식적으로 마련한 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만난 안드레아스(44)씨는 "시간이 넉넉할 때는 관광객이 많이 와도 상관 없지만 바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빨리 물건을 사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워낙 사람이 많아 장을 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하지만 대다수 바르셀로나 시민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다면 이 정도의 불편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불안한 치안=바르셀로나가 겪는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혼잡 문제를 뛰어 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람블라 거리에 배치된 쓰레기통은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로 오전부터 가득찼고, 바닥엔 담배꽁초가 즐비했다. 환경미화원이 수시로 오가며 쓰레기를 수거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가득찼다.

관광객이 몰리자 부동산 가격도 급등했다. 올해 4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기업 CBRE가 35개 관광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리빙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대비 집값 상승폭이 가장 큰 도시는 바르셀로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르셀로나 집값은 1년만에 무려 16.9% 뛰었다.

람블라 거리에서 만난 호세 베르미나(75)씨는 "관광객이 급증하자 물가와 부동산 값도 천정부지로 올라 토착 주민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면서 "높은 물가 때문에 주민들 상당수가 시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고 전했다.

바르셀로나 시 공립대학에 다니는 파울로 가르시아(18)씨는 "부동산 값이 너무 많이 올라 바르셀로나 근교에서는 방 하나를 빌리기 힘들다"면서 "결국 시 외곽에 집을 얻어 통학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발키라아 가르시아(18)씨는 "성가족성당 입장료가 해마다 올라 올해는 25유로(한화 3만2300원)까지 상승했다"면서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보니 관광객도 다 가는 성가족 성당을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치안도 주민들의 걱정거리다. AP통신의 올해 8월 보도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에서는 여행객을 겨냥한 강도 사건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급증했다.

호세 베르미나씨는 "나는 관광객이 아닌데도 소매치기를 당했다"면서 "저녁에는 현지 주민들도 불안해 3명이 무리 지어 다닌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중무장을 한 경찰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바르셀로나는 크루즈 관광객 급증에 따른 사회적 문제와 불법 숙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3번째로 큰 크루즈 모항지로 하루 최대 9대의 크루즈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하비에르 의원은 "크루즈 한 척에 통상 4000~5000명이 탄다. 때문에 크루즈 9대가 도착하면 바르셀로나 거리는 수만명의 관광객으로 금세 발 디딜 틈 없이 변한다"면서 "크루즈가 내뿜는 매연과 크루즈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라고 전했다.

불법 숙박 문제는 바르셀로나가 2017년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호텔 신축을 전면 중단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더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호텔이 수용하지 못한 관광객을 노려 불법 숙박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비에르 의원은 "불법 숙박은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크루즈 관광객 급증의 부작용을 포함해 불법 숙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광세로 관광객 줄이자는 뜻 아냐=바르셀로나시는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관광객으로부터 관광세를 걷고 있다. 관광세는 1박에 0.65∼2.25유로(약 860∼3000원)로 호텔 등급에 따라 납부 금액이 다르다. 관광세는 관광객이 체크인을 하면 숙박업소가 그 자리에서 직접 세금을 걷는 사후 징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제주도가 도입하려는 환경보전기여금과 유사한 형태다. 제주도의 의뢰를 받은 한국지방재정학회는 관광객 숙박시 1인당 1500원, 렌터카 1일 이용시 5000원(승합 1만원), 전세버스 이용 요금의 5%를 환경보전기여금으로 받자고 제안했다. 이 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쪽도 있지만 관광객에게 부담을 주는 방식의 환경보전기여금이 도입되면 제주 방문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라며 반대하는 쪽도 있다.

하비에르 의원은 바르셀로나시가 관광세를 도입할 때도 이런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관광객이 감소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숙박을 하는 관광객에 한해 관광세를 걷고 있고, 또 그 금액도 소액이다"면서 "여행사끼리 가격 경쟁을 해야하는 단체 관광 시장에서는 관광세가 부담될 수 있어도 개별 관광객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하비에르 시의원은 "간혹 관광객 수를 줄이기 위해 관광세를 거두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그런 목적은 아니다"면서 "거둔 관광세는 환경 정화 등 관리 비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행 상품 개발을 포함해 관광객 대상 뮤지엄 패스·교통 카드 개발 비용으로 투자하는 등 관광객 편의 증진과 유치 목적으도 쓰인다"고 덧붙였다. 관광객 수를 통제하려 관광세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관광객 급증으로 인해 사회적·경제적 문제는 필연적으로 뒤따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광산업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저해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수립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상민·김현석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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