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신작 시조집 오영호 시인

[저자와 함께] 신작 시조집 오영호 시인
“제주4·3 정명 찾는 그날까지 노래”
  • 입력 : 2019. 11.2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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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왼쪽). 제주4·3에 얽힌 가족사가 있는 제주 오영호 시조시인은 4·3의 정명을 찾는 그날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한라일보DB

형님 등 106명 희생된 고향
오늘도 한라산 떠도는 원혼들
‘연동리 사설’ 통해 신원 행위

시인은 안개비 내린 오름 자락에서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4·3을 떠올린다. 총알이나 죽창을 피하려 그 때 그 사람들도 고사리 캐듯 허리 숙여 들판에 숨어 지냈으리라. 고사리는 4·3에 가버린 형님 제사상에 올릴 거였다. 2005년 발표된 시집 속 '고사리'에 그 사연이 있었다.

제주도문화상 수상자로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지낸 시조시인 오영호. 신작 시조집에도 이 섬에서 일어났던 비극이 깊게 배었다. 시집은 4·3당시 연동리로 불렸던 시인의 고향 연동을 배경으로 사건의 발발에서 7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역사를 한 편의 서사시로 풀어낸 '연동리 사설'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유격대 총사령관 주검 6월의 햇살 아래/ 십자로 묶어 세운 관덕정 넓은 마당엔/ 길 잃은 까마귀 한 마리 빙빙 돌다 날아갔다// 10월의 정뜨르비행장 구덩이 길게 파놓고/ 탕 탕 탕 249명 중엔 나의 형님도 있어/ 아버진 화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광기의 시대 바람은 날마다 세게 불어/ 산사람도 무섭고 군경도 무서워서/ 주민들 갈림길에 서서 안절부절 떨고 떨었다'.

8쪽에 걸쳐 실린 '연동리 사설'의 한 대목이다. 젊디 젊었던 시인의 형님처럼 4·3으로 연동리 사람 106명이 스러졌다. 그들만의 고통은 아니다. 거친오름에서, 관음사에서, 도령마루에서, 박성내에서 눈물마저 메말라 버린 한을 본다. 영문도 모른 채 내란죄로 징역을 살았던 박춘옥 할머니는 제주섬 어딘가에 또 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지아비와도 일찍 이별한 어머니는 생을 어찌 견뎠을까. 시인은 '갈칫국'을 먹다 자꾸만 목이 메인다. '알싸한 국물 맛에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 당신은 차마 못 먹고 얹어주던 갈치 한 토막// 가시를 발라 먹다가 울컥//눈시울이 뜨겁다'.

시인은 가신 님의 원혼들이 오늘도 한라산을 떠돌고 있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시를 쓰는 일이다. 시인은 말한다. "깨어 있기 위하여 해와 달 별빛으로 허공에 서정의 집 한 채 지어 늘 신원의 등 밝혀놓고 4·3의 정명을 찾는 그날까지 노래하고 싶다." 다층.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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