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인셉션' 같아요. 저는 곧 깨어나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되겠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르자 봉준호 감독이 한 소감이다.
그러나 꿈은 현실이 됐다. 영화감독이 되고싶던 어리숙하고 소심한 소년은 마침내 세계 영화산업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그것도 한꺼번에 4개나 품에 안았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 상을 받음에 따라 봉 감독은 영화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모두 다 누렸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영화제 수상은 물론 평단과 흥행을 동시에 얻었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는 "전 세계 영화역사에서 봉준호처럼 영화제 수상과 흥행,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감독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톱 감독이 됐다"고 말했다.
강유정 평론가도 "봉 감독은 이미 미국 주류 영화계 일원으로 인식됐다"면서 "특히 그의 작품은 새롭고 낯설고 신선해서 대단히 많은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을 것이며, 몸값도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머러스한 화법·인간미로 팬덤 형성…"사실 나는 강박증"
봉 감독은 7개월에 걸친 오스카 캠페인을 거치며 이미 할리우드 유명인사가 됐다. '봉 하이브(Bong hive· 봉 감독 열성 팬덤)라는 신조어를 낳았을 정도다. 하이브(Hive)는 벌집을 뜻하는 단어로, 봉준호에 대한 열성적 팬덤을 '벌떼'에 비유한 것이다. 할리우드 거물급 인사들이 앞다퉈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모습은 더는 낯설지 않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 '빅쇼트' '바이스'의 애덤 매케이 등 유명 감독이 봉준호를 향한 '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는 "미국에서 같이 다녀보면 봉 감독인기는 예상과 상상을 넘어선다"며 "어느 행사장이건 사람들로 둘러싸이고 다들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그의 인기는 '기생충'의 뛰어난 작품성뿐만 아니라 유머러스한 화법과 인간적인면모에서 비롯한다. 각종 시상식에서 그의 수상 소감 한마디 한마디는 좌중의 웃음과 환호를 끌어냈다. 봉 감독과 마주한 사람들은 이미 웃을 준비가 돼 있다.
이달 2일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선 봉 감독이 말하는 중간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와 봉 감독이 우리말로 "왜 웃지"라고 묻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그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다. 자신의 공을 먼저앞세우는 법이 없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서도 배우들과 제작진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BAFTA 시상식에서도 "제가 쓴 대사와 장면들을 훌륭하게화면에 펼쳐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살아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보디 랭귀지야말로 가장 유니버설한 만국 공통어"라고 소감을 밝혔다.
늘 여유와 유머가 넘쳐 보이지만, 그는 사실 강박증과 불안에 시달린다고 고백한다.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정신과 의사가 내가 불안감이 심하다고 하더라.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강박적 성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영화 제작 덕분에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강박증은 완벽주의로 통하기도 한다. 매 작품 치밀한 시나리오와 디테일한 설정으로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독특한 상상력·날카로운 사회 인식 담겨
그런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상상력, 날카로운 사회 인식과 만나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의 영화는 범죄와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등 장르를 넘나들어 '봉준호 장르'라 불린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그의 작품 속에는 유머와 휴머니즘, 날카로운 사회 인식이 녹아있다.
7번째 장편 '기생충' 역시 빈익빈 부익부, 계층 문제와 같은 보편적 사회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녹여내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만화광이자 만화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직접 쓴 각본을 만화 콘티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티는 시나리오 속 배경과 인물,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 등을 그림으로 구현한 촬영용 대본이다. 아카데미 측은 봉 감독이 직접 그린 자화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16㎜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과 '지리멸렬'로 1994년 밴쿠버와 홍콩영화제에 초청되며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그의 집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예술가 피가 흐른다. 외할아버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쳔변풍경' 등을 쓴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이다. 아버지는 2017년 작고한 봉상균 씨다.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미대(시각디자인) 교수와 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등을 지낸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누나는 봉지희 연성대 패션산업과 교수, 형은 서울대 영문과 봉준수 교수다.
봉 감독 아들 효민(본명 봉효민) 씨도 영화 감독이다. 2017년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결혼식'을 연출했다. 봉 감독은 아내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 있다. 그는 "아내가 내 대본을 처음으로 읽는 독자"라며 "매번 대본을 끝내고 아내를 보여줄 때마다 두렵다"고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