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동은 신성하다'는 건 글쟁이들만의 주장일까. 그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옛 조선시대처럼 직업의 상하관계가 확연하다는 걸 일깨웠다. 오죽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식에게 숨긴다고 할까. "우리는 이제 사람이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 거의 바닥이거든. 더 이상 내려갈 데 없는 막장 같은 삶이라고 보면 돼."
서울의 모 대학 청소노동자를 '체험'하고 그들의 사연을 르포로 풀어낸 김동수의 '유령들'이 나왔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5조의 문구로 열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청소노동자의 근무 형태, 식사 현실, 휴게실의 역할 등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나 부재하는 유령들로 취급받는 걸 알게 된다.
지은이는 대학을 흔히 진리의 전당이라고 부르지만 청소노동자들은 딱히 잘못한 일이 없는 데도 차별과 무시 속에서 살아간다고 짚었다. 천대 받는 육체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멸시의 눈빛을 온몸으로 떠안는 감정노동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쓰레기를 치우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청소노동자에게 "냄새가 심하면 알아서 걸어 올라가든가"라고 막말하는 대학생의 모습은 그들이 겪는 일상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민주노조를 결성한 청소노동자들이 탄압받는 장면에선 대학의 민낯을 본다. 임직원들이 사학 비리를 저지른 재단 소유주에겐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지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향해선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다고 했다.
'유령들'은 대학과 용역업체의 끈질긴 방해 끝에 민주노조가 단체협약 교섭권을 잃는 걸로 끝을 맺는다. 패배의 기록이지만 마냥 암울하지는 않다. 청소 노동을 하는 자신들이 있는 한 현실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낙관을 전한다. 삶창. 1만4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