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50년 전 청년 전태일 외침을 기억하며

[책세상] 50년 전 청년 전태일 외침을 기억하며
투쟁과 연대의 기록 ‘여기, 우리, 함께’
  • 입력 : 2020. 05.0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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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싸움하는 노동자
“우리의 삶 이대로 괜찮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7가 평화 시장. 그곳에 자신의 몸을 불태운 노동자가 있었다. 전태일이다.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불꽃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외침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미 존재하는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켜달라는 거였다. 법을 지키는 일이 당연하고 법을 어기는 일이 비정상이어야 하지만 경제 발전의 기치 아래 근로기준법이 무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전태일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열한 개 출판사의 공동 프로젝트 '너는 나다'는 그같은 물음을 던지며 기획됐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태일을 기억하는 책을 펴냈는데 기록 노동자 희정의 '여기, 우리, 함께'도 그중 하나다.

'여기, 우리, 함께'에는 굴뚝에 올라 400일 넘게 버티고, 아스팔트 바닥을 오체투지를 하며 기고, 한 뼘 천막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파인텍, 세종호텔, 아사히글라스, 시그네틱스, 풍산마이크로텍, 택시 사업장, 톨게이트 등 노동할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나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과 그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연대하는 사람들을 기록했다.

오늘날의 노동 현실은 반세기 전과 비교해 놀라운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전태일의 목소리는 유효해 보인다. 사납금 제도에 맞서온 택시 노동자들은 말한다.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 국민소득 4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수많은 전태일이 산다. 대놓고 근로기준법을 팽개치던 50년 전과 다르게 기업들은 불법 파견, 사내 하청, 비정규직 등으로 불법과 편법을 교묘히 넘나들고 있다.

깔끔한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든,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이든 우리 모두는 노동자다. 노동의 가치가 날로 가벼워지는 세상에서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나눠가질 줄 모르는 이기적인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저자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주어지지 않기에 싸움이 그토록 길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갈마바람.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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