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애의 한라칼럼] 중년을 넘어서며 오는 변화

[우정애의 한라칼럼] 중년을 넘어서며 오는 변화
  • 입력 : 2020. 06.16(화)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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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동안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한 노인은 더 먼 바다로 떠난다.

그쯤 되면 그냥 돌아올 수도 있을 텐데 힘들고 절망적인 그 시점에서 한걸음을 더 내딛은 것이다. 84일째 노인은 넘쳐나는 청새치 떼를 만났고 감당하기 어려운 청새치를 건져 올리는 사투가 시작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작품 '노인과 바다'의 내용이다.

기력이 다해 절망적일 때 용기 내어 한발만 더 내딛으면 그 곳이 바로 원하는 목적지일지도 모르는 우리네 삶을 암시하며 꿈을 갖고 변화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대목이다. 또는 절망에 이르러서 다시 점프하는 용기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는 가르침이 녹아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늘 그렇듯 살아온 삶도 뒤돌아보면 가르침이 너무 많다. 가르침과 삶의 의미는 지나고 난 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의미도 모른 채 경험했다.'-T. S. 엘리엇(Eliot)

중년을 넘기며 의미도 모른 채 경험한 것들을 추려서 뼈대를 세워보니 내 앞에는 깊게 뿌리 내려진 변화된 '나'를 보게 된다. 언제, 어떻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채 맞이한 것이다.

그 변화의 첫째는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어려움을 경험하는 생활방식의 변화이다. 어려움이 오지 않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그럼에도 온다면 고통스럽게 받아드리지 않으려는 긍정으로 무장해진 자세, 다툼보다 수용이 더 편안한 것이었다.

둘째는 인간관계의 변화이다. 내 틀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상대에게 맞춰주는 관계가 가장 속편한 관계임을 알고 그렇게 옮기려 하는 자세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런 말들을 서슴없이 아들, 딸들에게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중년을 넘기며 흘러온 지금은 나보다 더 위대한 무엇과 유대감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인생에 있어서 나의 목적을 생각하게 되며, 미래 자식세대를 위해 남겨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자식세대를 위해 남겨둘 것이란 물질적인 것보다 정서, 문화와 연관이 깊고, 더 큰 유대감을 갖고 싶은 욕구는 영성일 것이며, 목적은 나의 소명과 비슷할 것이다. 나의 변화는 이러한 욕구에서 비롯됐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욕구들은 나와 친숙한 것들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변화를 원하게 된다. 이 친숙함이란 먼저 일상에 주어진 소박한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다.

또 하나는 직업인 심리상담을 더 깊게 나에게 녹여내어 해왔던 일에도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기를, 소년과 앉아 밥 먹기를 상상한 것은 일상의 소박한 것에 행복과 슬픔을 느끼는 나약한 노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이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큰 행복임을 절실하게 느끼기까지 나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것을 중년을 넘기며 깨닫게 된다.

"희망을 갖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죄악이라고. 누가 알겠어? 오늘은 운이 따를지 말이야. 믿음을 가져야 해." -노인과 바다 中-

중년을 넘어서며 꿈과 희망,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싶은 나의 욕구는 위대한 누군가와의 유대감 속에서 힘을 얻고 친숙한 것들을 업그레이드시키며 책임을 다하고 싶은 나의 변화인 것이다. 아울러 이 변화는 곧 나의 꿈이자 남기고 싶은 그 무엇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정애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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