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觀] 흐르는 강물처럼
  • 입력 : 2020. 07.03(금)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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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순'.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 근처에는 두물머리란 공간이 있다. 지명처럼 두 개의 물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뜻인데 두 강이 만나는 그 곳의 고요하고 너른 아름다움 덕에 사시사철 방문객들도 많고 드라마와 예능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강이나 산을 보러 가는 일은 드물었다. 늘 도시에서 살았기에 '가끔 자연을 보러 가자'의 마음으로 작정하고 향한 곳은 늘 바다였다. 부산과 제주의 바다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친구들을 보러 혼자 훌쩍 1박 2일의 바다 여행을 다녀온 적도 꽤 있었다. 바다는 이렇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공간이다. 특히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그 움직임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파도를 보고 있다 보면 저 멀리 수평선에선 고요하다가 뭍으로 가까워질 수록 펄떡이는 파도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다. 마치 용왕의 다급한 메시지를 전하듯 가까워졌다가 이내 사라지는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늘 그렇게 흥미로웠다.

바다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공간이라면 강은 또 다르다. 강은 바다만큼 변화가 잦은 곳이 아니라 강을 마주보고 있는 건 거울이나 창을 마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화가 나거나 흥분한 마음 상태일 때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길 물속이 전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늦게라도 강을 좋아하게 된 건 무척 기쁜 일이고 그래서 영화 속에 강이 등장하면 늘 반갑고 좋았다.

신준 감독의 데뷔작 '용순'에는 여름의 강이 여러 번 등장한다. '용순'은 첫사랑을 만난 10대 소녀의 두근 반 세근 반 달음박질을 경쾌하고 애틋하게 담아낸 영화다. '침묵', '차이나타운'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수경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강은 용순의 좋은 친구로 등장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낯선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갖고 싶은 벅찬 마음을 용순은 강물에다 쓰고 지운다. 아무 대답도 없는 듯 하지만 강은 어찌할 줄 모르고 뛰어 대는 소녀의 박동을 부드럽게 감싼다. 땀방울로 가득한 용순의 마음을 다독이는 강은 믿음직스러운 울타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림같이 우거진 산의 풍경과 천천히 흐르는 강의 움직임을 보는 것 만으로도 한숨 돌리게 되는 영화가 '용순'이다.

'용순'과는 전혀 다른 강의 정서가 보여지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은 흑백 화면 안에 겨울의 강을 담고 있는 영화다. 북한강변에 위치한 작은 호텔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가고 영화 속에는 강과 뭍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눈 쌓인 시간들이 소복하다. '용순'이 생의 정서로 충만하다면 '강변호텔'은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배우 기주봉이 연기하는 노시인은 서두를 것 없이 시간들을 살아내는데 그의 작고 조심스러운 움직임들은 강의 그것을 닮아 있기도 하다.

바람에 나부끼며 춤 추는 녹색의 잎들을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강의 고요한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여름의 즐거움 중 하나다. 어디론가 천천히 물길을 열어가는 그 작은 흔들림과 물보라를 느껴보길 바란다. 도심천의 작은 물줄기들 또한 그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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