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살목지
수면 아래
  • 입력 : 2026. 04.13(월) 02:00
  • 진명현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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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목지'.

[한라일보] 귀신은 왜 무서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아직 귀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귀신이 되기 전의 그가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아닌 것, 나와 같지 않으나 한때 나와 같았던 존재, 사후라는 두려움의 세계를 확인시켜주는 징조처럼 느껴지는 귀신의 이야기를 담은 공포 장르의 영화들은 오랜 시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서움을 사랑하다는 것'이 일견 아이러니하게 느껴 지기도 하지만 스크린이라는 안전한 장막을 앞에 두고 몰입감과 스릴을 만끽하는 공동의 체험이 가능한 극장 나들이에 공포 장르만큼 알맞은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팬데믹 이후 극장 영화 제작편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글로벌OTT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티켓 가격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과 극장 서비스에 대한 아쉬움도 연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의 극장가는 어둡지만은 않다.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 개봉 영화 매출 1위, 관객수 2위를 달성했고 <만약에 우리>, <신의 악단>을 비롯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들 또한 상반기 다수 등장하며 극장 영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 개봉한 이상민 감독의 공포 영화 <살목지>또한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몸집에 맞게 만들어진 깔끔한 장르 영화의 매력을 갖고 있는 <살목지>는 공포 영화의 필요 요소들을 적절하게 구축한 상태로 공포 영화에 관객들이 원하는 것, 즉 '현실에서는 보고 싶지 않지만 영화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차근차근 내어 놓는 영화다.

괴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살목지>는 영리한 기획 영화인 동시에 흥미로운 장르 영화다. 귀신이 나온다는 곳으로 유명해진 저수지 '살목지'의 로드뷰 화면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된다. 로드뷰 촬영을 진행한 회사의 PD인 수인(김혜윤)은 오늘 안에 재촬영을 해야 한다는 회사의 지시 아래 팀원들과 함께 살목지를 찾는다. 타인의 형체도, 꽤 먼 거리의 풍경도 가늠할 수 있는 낮 시간의 살목지는 인적 없는 고요한 풍광의 저수지로 보일 뿐이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기에 수인과 팀원들은 재촬영을 서두른다. 그때 로드뷰 촬영을 담당했던 수인의 선배 교식(김준한)이 살목지에 등장한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가 왜 다시, 갑자기 이곳으로 향한 것일까. 의문은 의심이 되고 낮의 고요는 오래가지 않는다.

<살목지>는 한국형 공포영화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부분인 '전사'에 크게 분량을 내어주는 영화가 아니다. 과거의 업보로 인해 관계가 얽히고 설키는, 그래서 신파의 영역이 공포와 부딪히는 길을 가지 않는다. 대신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지금의 감정에 집중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길목이라는 곳에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는다. 애도의 시간이 조금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죽음이 연속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쇄적인 죽음이 이어지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죽게 된다는 공식을 관객들과 등장 인물들은 시차를 두고 알게 되긴 하지만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목지>속 인물들은 죽음으로 뛰어드는 쪽을 택한다. 수살귀의 원한으로 인한 홀림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등장 인물들은 내 눈 앞의 누군가를 지키고자 혹은 죽음으로 인해 볼 수 없게 된 이를 만나고자 그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과 사라는 분명한 이분법 앞에서, 조금도 마르지 않은 감정 앞에서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이를 잃는 일이, 그리움과 미련이 쌓여 한이 되는 일이, 귀신이 된 당신이라도 봐야 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산 사람 안에서 싹튼다. 잊히지 않는 것들이 원한이 된다면 그것은 귀신의 영역 안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는 <살목지>가 무섭기보다 슬픈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본 것 같아서.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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