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기적같은 멜로드라마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觀] 기적같은 멜로드라마 '8월의 크리스마스'
  • 입력 : 2020. 08.21(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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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엄마가 말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8월 15일이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고, 그 바람이 느껴지는 순간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계절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한 여름 밤의 꿈 같았던 뜨거웠던 시간들도 찬찬히 식기 마련이다. 시간은 그렇게 마법 같은 구석이 있어서 많은 것들을 덮어준다. 어떤 순간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다른 계절의 바람은 작은 안도를 전해준다.

나에게는 연례 행사 같은 영화 관람의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8월에 한 번 그리고 12월에 한 번 일년에 두 번씩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봄날은 간다',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한석규와 심은하라는 두 배우의 걸출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곱고 맑은 멜로 드라마다. 1998년에 개봉을 했으니 이제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영화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하고 세련된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첫 손에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인생 영화의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는 어떤 감정의 상태에서 봐도 눈물이 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선 그 흔한 곡소리 한 번 나지 않는데, 어떤 날은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너무 서럽고 안쓰러워서 눈물을 쏙 빼기도 한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한석규 분)과 주차 단속 요원 다림(심은하 분)의 살짝 설레는 로맨스인 동시에 이제 곧 세상을 떠나야 하는 한 시한부 남자의 애틋한 일상의 기록이기도 한 이 영화는 과장과 허세 없이 반짝이고 때로는 어두운 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정교한 솜씨가 마치 손바느질 같고 그 정성이 손두부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 같은 영화다.

담담하게 세상과 자신을 둘러싼 시간들과 이별을 준비하던 정원에게 나타난 다림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많은 다림에게 정원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더 알고 싶은 사람이다. 씩씩한 다림은 정원이 가진 많은 문들을 수차례 노크하지만 정원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 닫힌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끝을 알고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 하기란 이토록 어렵고 모진 일이어서 둘의 사랑은 느리고 더디게 커져간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라는 신파적 설정이 기둥인 이 영화는 한 번도 손쉬운 눈물의 해결법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캐릭터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태도를 취한다. 적역을 맡은 배우들은 덤덤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그 변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먹먹하기 그지 없는 이 영화의 엔딩을 마주하고 나면 내가 본 정원과 다림의 이야기가 너무 진짜 같아서 잠시 멍하게 숨을 고르다 엉엉 울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제목에 담긴 두 계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마음을 씻는다. 좋은 마음으로 우려낸 차를 마시듯이 이 영화의 귀한 순간들을 눈물과 함께 삼킨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예의를 갖춘 이 클래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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