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4)올레(상)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4)올레(상)
올레, 구조, 돌담에 신·인간 영역 구분 '곱가름' 원리 적용
  • 입력 : 2020. 08.3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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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협력과 투쟁의 산물
올레는 공동체 결속 의미

올레는 곱가름 문화 상징

#개발의 폭력성에 무너진 마을

제주 마을이 제주답게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현대도시로 변하고 있다. 마을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동선이 파괴되고 있는데 그것도 대도시 주변 위성도시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정(淸淨) 자연이라는 말이 머쓱하게 바다도, 들도 오름도 같이 파괴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이 인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라지만, 지난 세월 자기와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 원형이 그야말로 초토화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가혹한 개발의 폭력성을 느낀다.

올레, 제주시 광령리, 2007년.

땅은 사람의 몸으로 생각하면 지문(指紋)과 같아 시간의 지층을 남긴다. 사람이 살아온 자취는 자신의 공동체에 고스란히 배어나는데 그것들이 우리의 본래 문화가 되는 셈이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우리 것'이라는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시간의 힘이다. 고향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리얼리티가 모아진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제줏말에 본향(本鄕)이라는 말이 있다. 상당히 아름다운 말이면서 쉽게 취급해서는 안 될 말이다. 본향이란 단지 '자신의 태생을 알리는 고향'을 넘어서는 말이기에 제주(섬)의 아이덴티티로 작용하고 있다. 본향이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회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소공동체의 세계관을 만들어 준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적 성원들 간 서로 희노애락을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 혈연(血緣)과 지연(地緣) 공동체 속의 의례를 통해 동일한 이념이나 노동에 대한 협력의 가치관으로 뭉쳐진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을은 본향의 문화 이미지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과 그것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온 삶의 투쟁이자 그 상징의 결과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삶과 마을을 지켜온 것이 바로 이 본향의식(本鄕意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활 속에서 형성된 평등적 가치관은 오랜 시간 같은 공동체가 준비하고 노력했던 의례의 결과이기도 한데 이는 마을이 하나의 생존권역이자 사랑과 협동, 저항과 투쟁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조상이 살아온 시간, 서로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공감각(共感覺)의 삶의 시간은 오늘날 우리의 의식에 녹아든 제주 정신의 모체가 된다.

우리는 소위 전통 마을을 함부로 '자신의 지문(指紋)과 같은 문화로 축적된 사회적 인문(人紋)'을 숙고한 계획 없이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땅이 사유재산이 돼버린 우리 사회의 한계 때문에 (재)개발을 쉽게 알고 가치관 또한 자본을 신격화하는 관념들이 지배하게 된 것은 여전히 우려하고 재고해야 할 세계관이다.

다른 올레, 제주시 유수암리, 2018.



#올레란 무엇인가

제주어 사전의 정의를 따르면, 올레란 "거릿길 쪽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드나드는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올(마을)길이 주도로라면 올레는 제각각 집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길이 되는 것이다. 올레는 짧든 길든 하나의 표시처럼 남기게 된다. 제주는 곱가르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곱가름'이란 신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했던 것인데, 그것이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 부모, 형제, 부부, 부와 자식, 이웃과 이웃 등 사람들 간 서로 사리(事理)를 분별하여 한계를 분명하게 가르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물에는 사물 간 사리가 분명해야 하는 이 곱(사리 분별, 구분)이 있다. 곱없는 사람은 염치없고 분별심도 없는 사람이 된다. 신(神)과 신(神)도, 신과 사람도, 사람과 사람, 남녀 부부 간에도 이 곱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 곱가름은 공간적으로 보면, 경계, 혹은 영역으로 나타난다. 시각적으로는 그것은 '그믓'으로 나타난다. 부모(父母),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 이웃 간에도 그믓을 그어 책임선, 혹은 자신의 영역을 분명하게 한다. '그믓'은 선(線)을 말하는데, 즉 영역을 표시하는 경계선(境界線)이자 구분선으로 소유선(線)이 된다. 보이지 않는 관념의 그믓도 매우 중요하다. 마을 바당밭에도 마을간 그믓이 있고, 큰 그릇의 밥에도 보이지 않는 그믓을 그어 자신의 몫의 양(量)을 짐작하여 먹는다. 가족 간에도 암묵적으로 그믓을 지키기 때문에 위반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올레의 구조와 구분도.

올레는 마을 길에서 마당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그 골목의 모양은 대개 휘어졌다. 물론 직선의 올레도 간혹 보이고, 올레 없는 집도 있다. 올래는 2m내외로 세대가 바뀌어 자동차를 세우려는 목적이 없을 때는 마소를 이용한 우마차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수준이어서 올레 주인이 아니고서는 우마차 운행이 쉽지 않다.

올레의 기능에는 바람을 완화시키는 기능, 마소를 관리하기 위한 기능, 집안으로 오는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기능, 긴 올레로 도둑을 방지하는 기능, 비리는(부정 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기능 등 민간에서는 매우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친화력, 같은 올레와 다른 올래

올레를 구분하면, '고튼(같은) 올레'와 '톤(다른) 올레'가 있다. 고튼 올레는 한 올레에 여러 집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올렛가지'라고 하여 마치 나무 줄기처럼 같은 올레에 사는 여러 집을 이르는 말이다. 대개 부모, 자식 세대가 고튼 올레였으나 역사 과정에서 고튼 올렛집의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올렛가지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이웃인 것이다. 고튼 올레 사람들은 서로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해주는 역할도 맡고, 불, 마소, 돼지, 이방인을 살피거나 아이들만 있을 경우 상황에 따라 집을 봐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서로 간 집안의 동향을 잘 알게 된다. 돌담을 사이 둔 이웃이라도 올레가 난 방향, 즉 올레 생활권이 같아야 진정한 동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톤올레(다른 올레)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골목과는 다른 곳이므로 고튼 올레와는 다른 관계를 맺으며 주로 특정한 일로 찾는 방문자 역할을 한다. 사실 올레 단위로 보면 고튼 올레 사는 성원은 모두 한 올레지만 고튼 올레에 살지 않는 타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톤올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고튼 올레에 사는 이웃은 톤올레에 사는 이웃보다 남다르다. 하나의 골목(통로)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웃 간 친밀도가 더 높다.

올레의 모양은 구부러진 형, 직선형, 올레 생략형, S자형, V자형 등 여러가지다

올레의 구조는 마을 길에서 바로 올레로 진입하는 올렛어귀가 있고, 거기에 정낭이 세워져 있다. 바닥에는 올레의 영역을 표시하는 올레 톡(턱)이 있으며, 또 올레가 끝나는 지점이 곧 마당 진입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 올렛목 바닥에 바로 마당의 경계 표시인 마당톡이 있다.

올렛가지에 있는 집에도 마당 시작점 바닥에 이 마당톡이 있다. 올레톡의 표시는 양팔 크기의 길게 다듬은 돌을 땅에 심는데 발에 걸리지 않도록 약간 도드라질 정도이다. 올레톡은 통로의 영역을, 마당톡은 개인의 영역으로 곱가르는 표시가 된다. 이 톡은 문지방(liminality)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상·장례식인 경우 사람들은 올렛어귀(입구)에서부터 걸어서 들어와야 하고 마당에서 사람들을 맞아야 한다. 돌담의 영역의 근본적인 결론은 바로 곱가름에 있다. 기르는 짐승을 가두는 것도 이 곱가름의 원칙이고, 이웃 간 소유권 경계인 돌담도 이 곱가름의 원리인 것이다. 이웃 간 돌담을 트는 것은 곱가름의 일시적인 해제이지만 그 속에는 암묵적으로 서로 큰일(大事, 혼사, 장례, 소상, 대상)이 생겼을 때 집이나 부엌을 빌렸을 때 넘나들어야 할 때를 대비하는 상호 부조(扶助)의 의미가 있다. 이런 돌담을 트는 행위는 반대로도 이웃집을 도와준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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