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주 변종태 시인 시집 '목련 봉오리로 쓰다'

[이 책] 제주 변종태 시인 시집 '목련 봉오리로 쓰다'
사월이란 나무에 조등처럼 피어난 꽃
  • 입력 : 2020. 11.1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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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란 나무에 조등처럼 피어나는 꽃을 소재로 제주4·3과 세월호 등을 새긴 신작 시집을 펴낸 변종태 시인. 사진=천년의시작 제공

‘자울락’ 뒤뚱거려온 봄날
한라산에서 탑동까지 넋들

떨리는 손으로 안부를 묻다

4월이 오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는 노래를 불렀었다. 오래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정명의 과제가 여전한 오늘이지만 제주4·3을 4·3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제주 변종태 시인은 '십 년 동안 흘러간 문장'을 어르고 달래 엮으며 목련에서 제주의 4월을 봤다. 상투성을 벗어나려는 의도인지, 시인은 신작 시집 '목련 봉오리로 쓰다'에서 지천에 시로 꽃을 피워내면서도 붉은 동백을 불러내지 않았다. 동백만이 아니라 제주 땅에 피고지는 생명들이 모두 다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제주로 향하는 뱃길에서 꽃다운 생명들이 무수히 졌던 것도 4월의 일이다. 이 섬의 봄은 서늘하다.

'사월, 그 나무'에 그 봄날이 있다. 쓸쓸하고, 어둡고, 축축한 사월이란 나무에 조등(弔燈)처럼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태생이 유배자인' 사람들('섬사람의 편지')은 '자울락자울락' 않으려 ('자울락거리다') 발버둥쳤다. 오죽하면 봄이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봄은 조울증으로 온다') 계절이겠나.

'사월이면 제주에 목련이 피는 이유를 알겠습니다.'란 구절이 담긴 표제시는 한 편의 제문처럼 읽힌다. 당신들의 얼굴, 당신들의 손길, 당신들의 이름. '한라산정에서 탑동 바다까지' 그것들은 '안개 입자만큼이나' 많고 많다. 시인은 떨리는 손에 붓을 쥐어 잡고 투명한 글씨로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당신들' 덕에 살아있음을 알기에.

시인의 애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주로 향하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이명처럼' 듣고 '우린 어떤 언어로 노래해야 하는 걸까/ 어떤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다보아야만 할까.'라는 '우울한 해도(海圖)'엔 희망이 가망으로, 기다림으로, 절망으로 바뀐 세월호 참사가 새겨졌다.

시인은 쉬이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목련 봉오리로 쓰다'에서 '써도 써도 다 쓰지 못할 그대들의 이름'이라고 했듯, 비릿해진 '애월 바닷가'까지 다다른 그의 시적 여정은 또다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천년의시작.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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