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觀]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입력 : 2020. 11.20(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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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있다.

이 단편집은 2019년 여름 출간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SF장르의 소설집으로 우리가 흔히 이 장르에 갖는 편견인 번쩍이는 금속성의 질감과는 반대로 부드러운 감촉의 서정성이 느껴지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스펙트럼'이라는 단편이 지난 해 영화 '벌새'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뜨거운 환대를 받았던 김보라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 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스펙트럼'은 사고로 태양계를 떠돌던 생화학자가 외계 지성체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생명체와의 만남과 소통에 대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단편의 마지막을 읽어 내려갈 때 쯤에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영화와 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읽어서 인지 자연스레 '벌새'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 '벌새'의 대사는 소설 '스펙트럼'의 정서와 감탄이 나올 만큼 닮은 꼴이어서 지난 해 문단과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두 여성 창작자의 만남을 기다리는 일이 설레기만 했다.

SF장르를 특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장르가 주는 신비로움과 고독함, 우연성과 필연성 같은 감정과 상황들에 매혹되는 일이 잦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가장 철학적인 장르가 SF 장르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계에서도 깊이 있는 감상을 요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스펙트럼'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드니 뵐뇌브 감독의 2017년 작품인 '컨택트'다. 최고의 과학 소설에 수여되는 8개의 상을 석권한 작가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에 나타난 의문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와의 기적과 같은 소통을 매혹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섬세하게 구현된 사운드 디자인과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3년 작품인 '그래비티'역시 SF장르의 영화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관람이 아닌 체험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래비티'는 우주 공간에 고립된 조난자가 느끼는 극한의 감정을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경이로운 영화다. 또한 두 작품에서 각각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에이미 아담스와 산드라 블럭은 본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첫 손에 꼽힐만한 훌륭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스펙트럼'을 비롯 영화 '컨택트'와 '그래비티' 모두 여성인 주인공이 우주라는 공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SF장르물이라는 것이다. 최근 문단과 영화계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여성 서사물들이 꾸준하고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이 새로운 물결은 SF라는 장르와 만나 더욱 새롭고 놀라운 창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눈부신 별의 흔적을 쫓는 것처럼 이 흐름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아직 우리가 가지 못한 세계, 여전히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에 대한 창작자들의 항해와 긴 호기심의 여정 끝에 탄생한 놀라운 결과물들에 감탄과 존경을 표한다.

<진명현·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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