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괴물들이 사는 나라

[영화觀] 괴물들이 사는 나라
  • 입력 : 2021. 09.10(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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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넷플릭스 오리지널 6부작 시리즈로 공개된 'D.P.'가 연일 화제다. 6부작 드라마라기보다는 6편의 중편 영화라는 호평이 있을 정도로 개별 에피소드의 완결성 및 완성도가 돋보이는 'D.P.'는 이야기와 연출의 호흡, 영상과 음악의 조화, 연기 앙상블의 매력 등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묵직한 메시지를 이야기의 재미에 녹여내는 노련한 화법이 마치 타고난 이야기꾼의 그것처럼 인상적인데 편당 40~50분 분량인 이 작품의 6부를 한 번에 내리 다 봤다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탈영병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의 이야기가 뭐가 그리 흥미롭고 재미있겠어 라며 시청 전 다소 심드렁하던 나 역시 그야말로 빨려 들어가듯 'D.P.'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정해인과 구교환을 필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하면서 보다 보니 어느새 벌써 20년도 더 지난 군대 시절의 내 기억들이 떠올라 마치 분할 화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어서 그런지 약간의 욱신거림을 동반하고 등장했는데 그것에 신경 쓰일 새도 없이 폭주하듯 후반부로 달려가는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D.P.'의 마지막 6부까지 다 보고 나니 나도 다른 시청자들처럼 예상치 못한 어슴푸레한 새벽을 맞게 됐는데 몸이 매우 피곤했으나 그냥 푹 잠들 수가 없었다. 극 중의 인물에게 당연히 애도할 시간의 필요했고 난데없는 기억과 마주친 나를 달랠 시간도 필요했다. 멍하니 앉아서 작품이 던진 여러 질문들에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졌으나 나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작품의 대사만 웅얼거리고 있었다. "진짜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왜 탈영하는가. 누가 탈영하는가. 'D.P.'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추적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그래서 이 나라의 20대 남자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대부분 군대에서 정해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제들은 이 입대에서 자유롭다. 여기서부터 염증이 시작된다. 군대를 지독한 계급 사회라고 하지만 군대뿐만이 아니다. 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D.P'는 곪아 터진 염증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시작으로 그 환부의 뿌리를 집요하게 더듬어 나간다. 왜 탈영하는가의 이유는 견딜 수 없어서다. 더 이상 그곳에서, 그 시간을 살 수가 없어서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면 그것이 바로 권력이 되는 군대라는 세상에서 침묵은 당연한 책임이자 약속이 된다. 상식을 벗어난 폭력은 눈 감고 감내해야 하는 규칙이 되고 그 규칙을 지킨 자들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염증을 키운 이들은 보상으로 결국 권력을 얻고 독을 뿜는 자들이 된다. 이 지독하고 매캐한 대물림의 지옥도에서 누가 탈영하고 왜 탈영하는가의 선명한 이유가 'D.P.'에서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또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폭력을 일상어로 쓰는 악마로 변하는 지도 목격할 수 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울먹이던 이가 후회를 한다고도, 거짓을 말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킨다는 보이지 않는 사명 아래 곁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한 이들의 도미노 같은 무너짐이 다만 뱉어내고 싶을 정도로 씁쓸할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근 몇 년 사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뉴스로 여러 차례 비난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쉴 새 없이 성폭력을 묵인하고 태연자약하게 차별을 정당화했다. 군대니까 어쩔 수 없고 군대라서 그럴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됐건만 요지부동이다. 'D.P.'가 세간의 화제에 오르자 최근 국방부 장관은 '조금 극화돼 있는 부분의 분명히 있다. 지금 군대는 많은 노력을 통해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하면 그만인 군대 사회의 특성이 키워낸 수많은 군폭 피해자들에게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군폭 가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회의 요직에서 폭력을 일상으로 휘두르는 괴물들에겐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D.P.'가 남긴 질문들이 좀 더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책임을 질 자들의 발언과 행동을 촉구하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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