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가족 시네마
  • 입력 : 2021. 09.24(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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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참이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는 계절에 찾아오는 명절은 풍요롭고 또 아름답다.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바꾸지 않을 만큼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거짓말처럼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24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소중하다. 이 좋은 계절에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한 곳에 모인다. 예전과는 다르게 서로가 더 멀리, 더 많이 떨어져 살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더욱 모이기 힘든 시대라 가족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애틋한 마음이 든다.

 이번 추석 연휴, 우리 가족의 며칠간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윷놀이를 하고 조금도 지치지 않는 조카들의 뜀박질을 어른들은 흐뭇하게 지켜봤다. 집 안과 밖을 바쁘게 넘나들며 가을의 조각들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어린이들의 움직임이 가을의 풍경과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핸드폰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순간마다 그림이 됐다. 노을이 지는 시간 비탈길에서 나는 익숙하지만 낯선 가족의 그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덧 훌쩍 자라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조카가 할아버지와 함께 코스모스를 보며 함께 걷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황금빛 태양이 하늘을 코스모스 빛깔로 물들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호흡으로 풍경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몇 장 찍다 멈춘 채 멍하니 둘을 바라봤다. 언제 저렇게 자랐을까 저 작은 꼬마는, 언제 저렇게 나이를 드신 걸까 우리 아빠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는데 내 마음속에는 꽤 큰 일렁임이 일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많은 영화들은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그리고 '어느 가족'까지 그의 영화들은 가족이라는 작지만 거대한 집단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풍경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버지와 조카가 함께 걷던 풍경을 마음에 담은 나는 마음에 담고 있던 고레에다의 영화 중 한 편을 꺼내어 다시 봤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장이 또렷한 영화다. 사려 깊고 조심스럽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덤덤한 어투로 정확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따뜻한 음성 안에 오래 고민한 질문을 건네는 그의 영화는 다시 봐도 뭉클하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기른 지 6년이 지난 아들이 병원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출생의 비밀을 빌미로 신파라는 난파선에 인물들을 태우지 않는다. 다만 일어나 버린 사건 후에 찾아온 지나쳐버린 시간들을 지금의 순간들 위에 천천히 포개어 놓는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이 예상하지 못한 가족들의 하루하루에 더해지고 알지 못했던 사실보다 더 크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의 표정들이 새로운 파도를 만들어낸다.

 평생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일부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이라는 존재, 어쩌면 존재감이 너무 커서 더 세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관계인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세월이 내게 준 시야들 덕분인지 영화의 곳곳에서 저절로 멈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조카만큼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도 아마 같은 시간을 선물했을 텐데 나는 이제서야 그 노을을 기억한 것 같다는 미안함과 좀 더 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다행스러움과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갈 시간의 노을이 어쩌면 각자에게 다른 길이의 거리감일 것이라는 쓸쓸함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같이 포개어졌다. 언젠가 우연히 보았던 아버지의 낡은 지갑 안에 들어있던 가족사진 속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있었다. 아직 우리에게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를 남길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올해 보름달에게는 많은 소원을 빌지 않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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