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수의 건강&생활] 신뢰로 만나는 환자와 의료진

[이길수의 건강&생활] 신뢰로 만나는 환자와 의료진
  • 입력 : 2021. 12.01(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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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혈관외과를 전공으로 삼은 후 삶의 선택이 늘 생사의 기로에 섰던 수많은 환자들의 편에 있었다는게, 지금도 감사하고 고맙다. 천방지축이었던 개인으로서의 어떻게 그런 용기를 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단어만 골라 보라고 한다면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싶었던 자랑스러운 의무'라고 대답하고 싶다.

치료를 받는 환자 뿐 아니라, 가족들의 고생도 공감하고 싶고, 얼른 힘든 회복과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한다. '환자편에 서서 생각해야 한다'는 교육의 힘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여하간 내 기억으로 환자나 가족들과 심한 언쟁을 한 적도, 소원해진 적도 없는 것을 보면, 한 명의 외과의사로서 정말 축복인 듯 하다.

대리수술, 수술실 내 성추행과 같은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에 큰 금이 가는 것 같아 무척 속상하다. 그런 행위는 단지 '일부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의사를 선입견을 가진 눈으로 보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의료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클리닉을 개원하면서 예전처럼 환자나 가족들이 극단의 수술적 공포와 맞서는 경우를 지켜보지는 않게 됐다. 심장수술보다는 간단한 시술 정도이니 부담도 훨씬 적다. 하지만, 이 간단한 시술을 앞두고도 대다수의 환자들은 불안해 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2년 전부터 '수술실 보호자 참관제'를 시행하고 있다. 직접 참관을 원하는 보호자가 환자곁에서 같이 자리를 하는 것인데 시술의 전 과정을 가족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환자는 안심할 수 있고, 보호자 역시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있어 좋다. 수술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보호자와 환자에게 수술과정을 직접 보여드림으로써 향후 치료방침을 수월하게 이해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딸이 엄마의 시술장면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실신하는 경우도 있었고, 시술과정에 대해 너무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수술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힘든 경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예상치 못했던 감동은 연세 지긋하신 노부부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시술을 하는 내내 대부분의 노부부들은 손을 꼭 잡고 계시다가, 끝나면 두분 모두 눈가가 촉촉한 경우를 자주 본다. 가벼운 시술이라도 내 가족이 느끼는 아픔이 내가 느끼는 아픔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어떤 제도든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기에 이러한 노력도 보완되고 개선돼야 할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의료진에 비해 '지식적 약자'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배려하면서 의료진과의 신뢰를 단단히 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의 개발에 대해 이해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더 많이 늘어나길 희망한다. <이길수 수흉부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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