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안다고 말하지 마라

[영화觀] 안다고 말하지 마라
  • 입력 : 2022. 01.14(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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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워 오브 도그'

영화 '피아노', '여인의 초상' 등을 만들었던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신작 '파워 오브 도그'가 최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극영화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제인 캠피온이 전작인 '브라이트닝 스타' 이후 무려 12년 만에 선보인 이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감독상을 수상한데 이어 또 한 번의 수상 낭보를 전하며 오는 3월 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파워 오브 도그'는 '결혼 이야기', '아이리시 맨', '로마' 등의 작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제작사로서의 파워와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의 라인업이기도 하다.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사이지만 '파워 오브 도그'는 안방에서 관람하기엔 좀 아까운 작품이다. 제인 캠피온의 고향이기도 한 뉴질랜드의 압도적인 자연 풍광과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조디 스콧 맥피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팬텀 스레드', '마스터' 등을 통해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선율을 만들어냈던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까지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호흡해야 그 진가가 더욱 체감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파워 오브 도그'는 넷플릭스 공개와 함께 국내 극장가에서도 상영이 진행되고 있어 그 온전한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가느다란 끈을 엮어 튼튼한 밧줄을 만들듯 진행되는 서사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의 몸을 옭아매는 듯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결말에서는 앞 좌석 등받이까지 쑥 나아간 상태로 탁월하고 놀라운 반전에 탄복하고야 말았다.

 토마스 새비지가 1967년에 발표한 소설 '파워 오브 도그'를 원작으로 삼고 있는 영화는 실패한 사랑 이야기라는 씨실과 잔인한 생존의 기록이라는 날실을 엮어 은막을 수놓는다. 영화의 시작 황야에 불어오는 먼지들의 입자처럼 이 영화는 은밀하고 내밀하다.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은 점층적이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는 깊고 넓다. 1920년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부풀린 짐승의 몸짓처럼 과장된 남성성으로 위장한 필은 그의 동생 조지가 로즈와 결혼해 그녀와 그의 아들 피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섬세하고 유약한 청년 피터를 조롱하던 필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에게 다정한 친절을 건네기 시작하고 둘의 관계는 물론이고 조지와 로즈를 포함한 넷의 관계 또한 미궁 속으로 치닫는다.

  '파워 오브 도그'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떠올리게 하는 퀴어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언급한 작품들과는 달리 건조하고 냉정하다.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의 한때를 누린 이들이 갖게 되는 달콤한 격정이 '파워 오브 도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내지 못하는 용기와 먼지 속에서 벌어진 착시와 착각이 남긴 혼돈만이 뚜렷할 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인데 이것은 그 인물의 전체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당신을 알아봤기에, 당신이 나를 알아줬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렇게 시작된 사랑만큼 미스터리 한 감정도 드물다. 사랑은 호감일까, 욕망일까, 믿음일까, 아니면 나와 닮은 사람을 발견하고 싶은 추적일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느끼고 믿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충분한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해진다는 측면에서 '파워 오브 도그'는 대단히 정교하고 미묘한 멜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이 작품을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두 번째 감상에서는 인물들의 눈빛을 따라가 볼 생각인데 대사는 많지 않지만 수많은 눈빛들의 엇갈림과 마주침으로 단단한 서사를 만들어낸 작품이기에 새로운 발견들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아마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관왕이 되리라 짐작되는 '파워 오브 도그'를 가능하면 스크린에서 인물들의 호흡과 함께 따라가며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린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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