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만난 아버지… "오늘은 슬픈 날 아닌 기쁜 날"

74년 만에 만난 아버지… "오늘은 슬픈 날 아닌 기쁜 날"
10일 오전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4·3희생자 유해 5구 가족의 품으로 귀환
발굴 유해 411구 중 138명 신원 최종 확인
  • 입력 : 2022. 02.10(목) 16:45
  • 김도영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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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개최된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4·3유족청년회원들이 희생자들의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1948년 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오신 아버지는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 헤어졌습니다. 단 한번 만이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은 슬픈 날이 아닌 기쁜 날로 간직할 것입니다."

4·3희생자 김석삼 씨의 딸 김영순(74) 씨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떨렸다. 태어나 3일 만에 헤어진 아버지의 존재는 김 씨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10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는 제주국제공항에서 수습된 4·3희생자 발굴 유해 5구가 74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4·3희생자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총 5구로 행방불명자 2구, 군법회의 희생자 3구 등이며 신원은 고군현(1926년생·대정면 안성리), 김영송(1918년생·조천면 함덕리), 김석삼(1914년생·서귀면 호근리), 김규희(1924년생·제주읍 화북리), 양희수(1923년생·한림면 동명리) 희생자로 확인됐다.

김석삼 희생자의 딸 김영순 씨가 74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향한 추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태어나 3일 만에 아버지와 생이별했던 김영순 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가족들을 통해 전해 들은 아버지의 모습은 막연한 존재였다. 정말 단 한 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며 "이제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너무나 반갑고 작게나마 자녀의 도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제 나이도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며 아버지를 만난다는 희망도 점점 시들어 가다 뉴스를 보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유전자 검사에 참여했다"며 "몇 주전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연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아버지가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영송 희생자의 딸 김인희(84)씨는 "아버지를 찾아줘 고맙다"고 말했다.

김인희 씨는 "아버지는 육지로 장사를 하러 다녀 집에서 자주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자리에 어머니가 말도 못 하게 고생했다"며 "오늘 이렇게 아버지를 다시 만나니 그 흙 구덩이 속에서 나온 것만 생각해도 많은 분들께 너무 고맙다. 기쁘고 좋다"고 다시 만난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편 이날 보고회는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해까지 제주국제공항 등지에서 발굴한 유해에 대해 이승덕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팀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을 활용해 신원확인을 실시했으며, 이로써 지난해까지 발견된 총 411구의 유해 중 138명의 4·3희생자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부모와 형제를 가슴에 묻고 인고의 시간을 그리워 한 유족들에게 위로와 함께 희생자 영령들은 이제 서러움과 노여움을 거두시고 영면에 드시길 바란다"며 "앞으로 4·3평화재단은 한 분의 유해도 방치되지 않도록, 유족을 찾지 못하는 유해가 한 분도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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