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목련이 필 때면, 이중섭거주지를 찾는다.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돌담에 기댄 채 하얀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또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이중섭(1916~1956)과 서귀포에 얽힌 이야기와 행사들이 많은 해다. 이중섭거리 선포 25주년, 이중섭미술관 개관 20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1951년 1월, 한국전쟁 당시 이중섭가족은 피난 차 제주를 찾았다. 먹을 것과 살 집 조차도 변변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서귀포에서 지낸 날들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족들과 살을 맞대며 살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중섭주거지 안내판에는 "이중섭 가족은 1.4평(4.6㎡)의 작은방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찬 없이 밥을 먹고, 고구마나 깅이(게)를 삶아 끼니를 때우는 생활이었지만, 웃으면서 살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적고 있다. 식구 4명이 눕기에도 비좁은 공간에서의 행복의 농도는 얼마나 진했을까.
제주를 떠나 부산으로 간 이중섭은 부인, 두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술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다 5년 만인 1956년 9월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는 향년 39세.
그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의 흔적은 이중섭미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노라며 쓴 손편지 내용이 예술가이기 전에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 감동적이다. 작품 '아이들과 끈'(1955), '물고기와 두 어린이'(1954) 등을 통해 아이들과의 끊을 수 없는 인연과 그리움을 대신했고, '현해탄'(1954)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습도 그렸다. 지난해 삼성가에서 기증한 '섶섬이 보이는 풍경'(1951) 등의 유작도 궁핍한 피난살이에도 따뜻한 톤으로 그려냈다.
서귀포시가 올해 이중섭을 기리며 여러가지 사업을 벌인다. 오는 3월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과 이중섭거리 선포 25주년 문화사랑방을 비롯해 창작오페라, 세미나, 예술제, 그림편지쓰기 등을 다채롭게 준비한다. 이중섭미술관을 새롭게 확장해 개관을 계획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중섭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낄 때 살아 있다. 그를 기리며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은 후세인 우리들의 도리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연중 이뤄지는 행사장을 찾아 그의 예술혼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으면 한다.
행정에선 올해는 이중섭과 관련해 특별한 해인만큼 이중섭거리에 대해 주말 특정한 시간 만이더라도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문화 난장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주민과 상인들이 재산권 행사나 향후 개발 제한 등의 사유로 난색을 표하고는 있다지만, 막상 판을 벌여놓으면 주변 상가 활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에 행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해 조율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섭 브랜드를 강화하겠다는 행정의 실질적인 의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목련은 피지 않았지만, 그 '하얀' 흔적은 봄이면 뇌리 속에 먼저 피어난다. <백금탁 제2사회부장 겸 서귀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