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내 안의 그때
  • 입력 : 2022. 04.01(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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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벨파스트'

이야기는 어디에서 태어날까. 그리고 태어난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질까. 소설로, 영화로, 음악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안에 자리잡고 있던 감정들이 쌓이고 뭉쳐져 빚어진 고유의 형상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어느새 커져 있거나 짐작과는 다르게 달라져 있는 그 모양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순간, 그 이야기는 세상에 전해질 준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 다른 이들과 일정 부분 비슷하기도 또 다르기도 한 어떤 순간의 이야기. 아마도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자기 안에서 비롯되어 타인의 마음으로 향하는 여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내 안의 그때를 누군가의 지금과 마주보게 만드는 빛나는 만남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영화 '벨파스트'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향수를 자극하는 흑백의 영상 안에 담긴 지난 시간들이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모두가 이름을 알고 부르는 아홉 살 동네 꼬마 버디, 세상의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질 것 같은 자연스러운 호명의 시간. 저녁밥을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부름이 동네 주민들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지고 즐거운 놀이 시간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뛰어오는 버디의 환한 웃음을 담고 있는 '벨파스트'의 초반부는 보는 이들 또한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그때를 소환하게 만드는 이 시작의 바로 뒤에는 모두가 한 가족인 정겨운 동네에 불어닥치는 종교 분쟁의 낯설고 난폭한 순간이 자리한다. 소년의 삶을 더없이 따스하게 감싸는 소리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굉음이 함께하는 그때. '벨파스트'는 그렇게 언제 찾아올 지 모를 생의 순간들, 소소한 희극 이기도 충격적인 비극 이기도 한 그 순간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다.

나라는 세계, 가족이라는 우리 그리고 세상이라는 미지를 겪어가는 작은 소년이 마주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 소년이 오랫동안 담아왔던 어떤 것들이 모여 영화 [벨파스트]로 완성되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소년의 시선인 동시에 소년을 품은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시선이기도 하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케네스 브래너는 자전적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완성도로 마무리 지으며 자신의 한때를 영화적 순간으로 탄생시켜 관객들에게 건넨다. 또한 이 작품은 영화라는 꿈을 업으로 삼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을 다시금 찾아가는 여정 이기도 하다.

많은 창작자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이런 여정들을 관객들에게 벅차게 전해왔다. 많은 부분 '벨파스트'와 닮아 있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또한 자전적 이야기를 흑백 영상 안에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네마'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사한 대답이었던 '로마'와 '씨어터'라는 어떻게 유년을 사로잡는가에 대한 사랑스러운 예시 와도 같은 '벨파스트'. 휘몰아치는 장엄한 파도를 닮은 '로마'에 비해 '벨파스트'는 따뜻하고 서늘한 바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경쾌한 작품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스스로의 과거를 현재에 꺼내 미래에 미리 묻어두는 영화이자 영화를 택한 소년들이 스스로의 유년에 바치는 헌사로 오래 기억될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유성은 아마도 창작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요소일 것이다. 나만의 것이 과연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 이미 꺼내어진 이야기는 아닐지 혹은 끝내 타인에게는 닿지 못할 사사로움에 그치지 않을지. 많은 이들이 밤이 새도록 입술을 깨물고 과거를 긁어댄다. 하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를 쓰는 이는 나 뿐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작고 부족해 보여도 나만의 것을 온전히 느끼고 정확히 표현하는 일.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타인에게 말을 걸기 위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화법이 아닐까. 지나온 삶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해지고 닳아버린 추억의 모서리들을 쓰다듬고 쌓인 먼지들을 정성스레 닦아내는 일은 아마도 기술력의 진보가 닿지 못할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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