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바람에 벚꽃이 마지막을 알리며 꽃비로 내리고 있다. 제주시권 대표 벚꽃길인 제주대학교와 제주종합경기장 일대를 지나며 '벚꽃은 잠시 우리 곁을 맴돌다 가는구나, 삶의 그러하듯 사라지면 곧 잊히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벚꽃은 제주와 인연이 깊은 꽃나무다. 그 인연의 시작은 푸른 눈의 이방인 사제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Emil Taquet: 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08년 4월 14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호아천)에서 왕벚나무를 채집해 '제주도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한라산에 자생하는 구상나무와 제주를 대표하는 온주밀감을 처음으로 들여온 인물이다. 모두 110여년전의 일들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왕벚나무와 구상나무의 진가를 알고 이를 세계에 보고한 '제주학의 선구자'였다.
특히 올해는 타케 신부가 타개한 지 7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년 2023년은 그가 태어난지 15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이에 지난해 3월, 서귀포문화사업회가 '에밀 타케의 정원, 어떻게 만들까'의 주제로 포럼을 열고 기념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타케 신부가 머물렀던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면형의집에 타케의 정원을 만들자는 의견이었다. 그의 존재를 후대가 기억하고 기리는 '150년 시간의 통로'로 활용하자는 것이 이 사업의 요지다.
다만 현재 국비 등 예산 확보가 안 돼 사업은 답보 상태다. 민간 차원에서 에밀타케신부정원조성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결과물은 다소 빈약하다. 행정적 관심과 지원도 부족하다. 코로나19로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각종 행사 개최에 따른 제약도 있겠으나, 무관심 속에 비대면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학술행사나 비대면 체험 프로그램 운영조차 없어 아쉽다.
타케 신부를 기억하는 일은 제주로선 매우 중요한 일이다. 타케의 정원 조성뿐만 아니라 학술연구총서 발간, 식물표본도록 제작, 타케 신부 기념주간 운영 등 보다 활발한 연구와 후속 사업 추진이 요구된다.
잊는다는 것은 잠시 일 수 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잊히는 것이다. 제주의 자연과 감귤산업 등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타케 신부에 대한 도민과 행정의 관심이 절실하다. 분홍빛 꽃천지에서 인생사진을 남기고 추억을 쌓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이고, 이런 사실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타케 신부까지 함께 기억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벚꽃 엔딩. 벚꽃이 지고 있다. 지난겨울 그토록 고대했던 봄이 왔고, 봄꽃이 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시간의 굴레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홍규 대구교구 신부가 올해 본보 특별기고를 통해 제주 자생 토종 왕벚나무를 보호하고, 자생지 보존, 증식을 통한 적극적 활용,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스토리 세계화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이제, 우리의 실천만이 남았다. <백금탁 제2사회부장 겸 서귀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