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석의 한라칼럼] 황무지의 4월

[문만석의 한라칼럼] 황무지의 4월
  • 입력 : 2022. 04.12(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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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월이다. 시인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듯 우리에게 4월은 여러모로 잔인하게 다가온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정점에 이르지 않고 맹렬한 기세를 내뿜고, 미세먼지는 봄날의 싱그러움을 보란 듯 앗아가고, 아직도 바른 이름이 없는 4·3은 매년 4월 초 붉은 동백 꽃잎과 함께 온다. 정치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허무와 함께 다시 4월은 정치의 바람을 안고 다가왔다. 정치의 계절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이념과 지역이 나뉘고, 세대가 갈라서고, 젊은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극도로 분열됐다. 하물며 이십대 남자를 일번남과 이번남으로 분류한다고 하니,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조각난 퍼즐 같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분열돼 갈등하는 사이, 저 멀리 흑해 연안의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강대국의 이기심과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전쟁은 폭력의 야만성과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폭격에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에서 우리 마음의 잔인함과 분노를 읽는다. 21세기 문명의 시대에 단지 몇 명의 마음에 새겨진 감정과 타산으로 전쟁이 벌어진다. 그 전쟁으로 희생되는 생명의 가치는 전쟁을 일으킨 자의 감정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전쟁을 부른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세상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양보와 배려 대신 아집과 독선이 지배하는 한 우리 마음은 가장 잔인한 4월이 된다. '황무지'에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 되는 이유는 따뜻한 겨울이라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안주해 틀을 깨는 깨달음과 탄생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해도 생명을 잉태할 수는 없다. 황무지에 라일락이 자라나려면 얼어붙은 마음의 땅을 깨고 둔한 뿌리를 내리는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

다시 4월이다. 조각난 우리 마음을 잘 추스를 시간이다. 무턱대고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하면 더 헝클어질 뿐이다. 모서리 부터 하나씩 조각을 맞춰가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 차이를 수용하고, 이 세계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의 세계임을 자각해야 한다.

4월은 잔인하지만 따스하다. 숱한 역사의 질곡을 헤쳐 온 제주에도 다시 4월이 왔다. 올해 제주 4월에는 '4·3 특별법'이 전면 개정돼 4·3 희생자에 대한 명실상부한 명예와 피해 회복이 이뤄질 수 있게 됐다. 지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고, 마음과 마음이 모여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붉은 동백꽃은 황무지에서 일궈낸 화해와 평화의 오롯한 마음이다. 갈등과 반목을 내려놓은 화해와 용서의 마음이 황무지를 싱그러운 푸른 초원으로 이끈다. 이제 우리 마음을 돌아보며 날카로운 마음의 조각을 부드럽게 갈무리하자. 4월은 그렇게 완전해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문만석 사)미래발전전략연구원장.법학박사.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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