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인생의 길잡이는 될 수 없지만

[이소영의 건강&생활] 인생의 길잡이는 될 수 없지만
  • 입력 : 2022. 04.13(수)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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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매일 같이 다양한 사람과 각양 각색의 증례를 마주치고 치료 방향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혹은 왜 살아야 하는지 같은 몹시 철학적인 질문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의사로서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물학과 생화학, 생리와 약리, 병리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일 뿐, 나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부족한 인간에 불과해서 그런 질문은 언제나 어렵다. 그 간의 배움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조금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상대방과 대화하고 조금 더 잘 알아듣는 법을 훈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나의 이해는 여전히 커다란 백사장의 모래 한 줌 정도인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감히 누구한테 인생에 관한 조언을 하거나 길잡이가 되어 대신 결정을 내려줄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제가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하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도, 왜 살아야 하고 묻는 건 아마도 살고 싶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 절실한 얼굴을 앞에 두고 거창하게 인생의 의미를 둘러대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궁극적 질문을 해결하지 않은 채 "당신은 마음이 아픈 것이니 약을 드시오" 하고 처방전을 내밀 수도 없다.

본인은 이제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몇 주 째 눈을 꼭 감고 입을 꽉 다물고 말도 하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노인 환자도 있다. 당장 탈수 증세로 신장 수치가 치솟고 맥박과 혈압이 불규칙해지는 상황에서 과연 이 환자에게 인생의 의미가 뭔지는 고민하기 힘들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 환자를 치료하게 해달라고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할 때도 많다.

그렇게 살릴 수 있었던, 좋아진 것처럼 보였던 환자가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함께 노력했고 살아갈 의미를 찾아낸 것처럼 보였는데 다시 모든 걸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볼 때는 내 마음도 내려 앉는 것 같다. 60여년을 해로한 배우자의 죽음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노인 환자가 오랜 치료 끝에 좋아져 웃으며 병원을 떠났는데, 불과 몇 달 뒤에 단 하나 있던 자식을 잃고 다시 병원으로 온 적도 있다. 어려운 순간들이다.

내가 겪지 못한 일을 겪는,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환자들 앞에서 내가 뭐라고 감히 인생의 의미를 논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나는 비록 인생과 존재의 의미는 모르고 가르쳐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당신이 살아갔으면 좋겠고, 당신이 의미를 찾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고. <이소영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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