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엽의 한라시론] 나무의 위기대응

[성주엽의 한라시론] 나무의 위기대응
  • 입력 : 2022. 04.21(목)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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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는 없다. 간혹 그 형태가 꽃같이 안 보일 뿐 종족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나무가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을 사는 나무에게는 사람이 가지지 못한 생존의 비결이 간직돼 있어 배울게 무척 많다. 나무는 자신의 할 일을 시기에 맞춰 미리미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 꽃과 잎을 피우기 위해 6개월 이전부터 꽃눈, 잎눈을 준비하고 하늘과 대지의 기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해진 철에 꽃을 피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정말 짧은 시간을 위해 나무는 그 긴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한다. 그리고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수정도 해야 한다. 색깔과 형태, 향기 등 자신이 가진 매력을 뽐내며 벌과 나비, 새를 불러 자신의 꿀을 내어주며 수정해 씨앗을 잉태한다.

나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씨앗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담은 씨앗을 품기 위해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생명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잔뿌리 끝에서 수분을 빨아올리려 안간힘을 써야 했고 작은 잎새로 뜨거운 햇볕을 받아내며 영양분을 만들어야 했다. 씨앗을 위한 긴 시간 뒤에는 차가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겨울나기도 준비해야 한다. 이파리를 떨어뜨리며 수분증발을 막아야 하고 힘들게 키운 자식을 떠나보내야 한다. 자식의 독립을 위해 떨어뜨려야만 한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자신의 운명임을 알기에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기나긴 숙명의 시간들을 위해, 다시금 자신을 정비하며 자신을 추스른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 들여야 한다. 이것이 나무의 기본이다.

때로 기본 흐름에서 벗어난 강력한 병충해와 가뭄과 태풍 그리고 산불이 올 때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이처럼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 나무는 어떻게 대처할까. 위기를 느낄 때면 맹아를 끌어올리며 꽃을 피워 다음을 준비하고 가을 순을 뽑아 올리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위기에 뿌리 역시 생존을 위한 최선의 힘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나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게 된다. 사람 역시 극한의 위기에서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스스로 극복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위기와 난관이 고통스럽지만 지난 시간의 방만함과 준비 부족을 깨닫게 하며 위기 후에 더욱 견고해지려 노력하게 된다. 어려운 난관을 뚫고 가면서 자태와 품격이 변하는 모습은 나무와 사람의 일생이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산불, 참으로 혹독한 시간들이었다. 무비유환(無備遺患)! 준비가 없으면 반드시 환란이 온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반복한다.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치열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는 언제나 나 스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주엽 생각하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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