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테이블 매너
  • 입력 : 2022. 04.29(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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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설가의 영화'

봄 극장가에 자신만의 예술 창작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두 거장의 작품이 선보인다. 무려 27번째 장편을 선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와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칸과 아카데미 각본상을 석권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제목처럼 소설가가 영화를 만들게 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고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우연한 만남에 더해진 이야기꾼의 상상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단편 소설집 같은 영화다. 두 편 모두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인 동시에 왜 이 두 거장이 전 세계 평단과 관객들을 설레게 만드는 지를 입증하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의 세계는 넓어지는 동시에 좁고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선보인 두 편의 영화 '인트로덕션'과 '당신얼굴 앞에서'에 이어 '소설가의 영화' 또한 간결하고 담백하다. 마법의 초록병은 자취를 감추었고 인물들이 걷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대화의 자리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홍상수의 세계는 무척이나 견고한 동시에 관객의 들고 남이 자유롭다. 그 점은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를 매년 기다리는 관객들을 만들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들은 단호하게 직언하는 듯 보이지만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삶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각자인 스스로가 답을 내기 위한 여정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의 영화들은 영원처럼 반복되는 매일을 탐색하는 산책인 동시에 그 산책길 위에 누구라도 오를 수 있다는 초대이기도 하다. '소설가의 영화'는 대화로 이루어진 장면들이 범상한 일상의 순간들처럼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를 하는 작품이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늘 그랬고 언제나 똑같지 않았듯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머무르는 이들 그리고 남겨진 말들이 풍성한 겹을 만들어 낸다. 흑백의 화면은 특수 효과나 시각적 장치 없이 아주 높은 곳에서 시작해 아주 가까운 곳까지 선명하게 비춘다. 극단적으로 단조롭기에 명징한 심도를 보여준다. 그의 영화를 보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의 영화'를 따라 걸었다. 같은 곳을 보폭을 맞춰 걷기도 했고 길 위에 멈춰서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지나친 길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 흥미로운 창작자의 비밀이나 실체를 알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졌고 그저 그의 영화가 지나간 자리에 나의 감정과 감각이 움푹하게 파여 있었다. 아마 거기에서 나의 비밀도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됐다.

 홍상수의 영화가 먼저 걷는 이의 행보를 보여준다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끊임없이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하며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의 서사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데 이 비범함의 비결은 사소한 것에서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 그의 관찰력과 집중력에 있는 것 같다. '우연과 상상'은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작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난감한 상황, 난처한 관계, 낙관의 여지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하마구치의 영화들은 사사롭게 느껴지는 상황들을 모조리 이야기의 그물 안에 가둔 후 천천히 비늘과 눈동자를 바라보는 예민한 어부의 작업과도 닮아 있다. 전작들에서도 그랬든 그는 막힌 골목에서 당황하지 않는 창작자다. 홍상수가 길을 내는 쪽이라면 하마구치는 길을 찾아내는 창작자다. 맞닥뜨리는 감정들, 감정 뒤에 남은 것들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상황의 무드와 깊은 잔상까지 그는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관객들을 앞에 앉혀 놓는다. 피리 부는 아저씨의 주술 같은 멜로디처럼 그가 만든 영화들은 보는 이들에게 조바심 끝의 탄성을 선물한다.

 창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궁금한 것은 아마도 영감의 순간을 어떻게 길어 올려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가 일 것이다. 창작의 비밀은 일견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종류의 레시피 같기도 하다. 법칙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수행 하기란 마치 요리처럼 쉽지 않다. 누군가는 도처에서 식재료를 발견해 자신만의 요리로 완성시키곤 하는데 과정의 표식들을 따라 한다고 해서 그 요리만의 표정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결국 모든 예술 창작에 있어 고유성은 공유된 비밀이자 거짓말로 느껴지는 진실인 것이다. 하지만 탁월한 창작의 결과 앞에서 시무룩해질 필요는 없다. 고유한 세계를 넘나들며 비밀을 채집하고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긴장을 즐기는 것은 예술을 누리는 이들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잘 차려진 밥상 위에 숟가락 놀음이야 말로 사실은 가장 짜릿한 즐거움이 아닌가.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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