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으뜸 가르침으로서 종교

[김준기의 문화광장] 으뜸 가르침으로서 종교
  • 입력 : 2022. 06.07(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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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한자는 '宗敎'이다. 풀어쓰면 '으뜸가는 가르침'이다. '가장 뛰어난 것, 으뜸'의 뜻을 가진 글자가 바로 '마루 종(宗)'이다.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관한 성찰로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남긴 성현을 따라 배우는 것이 종교의 근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종교는 이 근본을 잊고 있다. 으뜸 가르침을 나누는 배움과 실천의 장이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따르고, 모시고, 섬기는' 일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종교의 종자는 '마루 종(宗)'이 아니라 '따를 종(從)으로 바꿔야할 판이다. 물론 따르고, 모시고, 섬기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여서 그 자체를 폄하할 일은 절대 아니지만, 종교의 본래 기능을 생각해보건대, 따를 종의 종교관으로 종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종교가 '종속적(從屬的)인 것, 주(主)가 되는 것에 딸리는 것'으로서 해당 종교에 몸담은 사람들의 위치를 설정하고자 한다면 과거와 현재까지는 몰라도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미래 인류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종교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정신성을 창출하는 주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종교는 신앙으로부터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 이전에 윤리이자 철학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문명의 시원 이래 지금까지 종교는 인간이 절대적 존재에게 의탁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신앙의 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아왔다.

겉으로 신앙 문제는 종교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종교는 개인적인 신앙을 너머 인간사회의 윤리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작동해왔다. 인류사회가 본격적으로 공동체를 체계화할 때 종교는 윤리를 작동하게 하는 구심이었다. 당시 종교는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에게 윤리적 삶을 가르치고 지속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었다. 나아가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철학의 문제를 다뤄왔다. 종교는 우주 근원과 인간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식론과 존재론을 펼쳐나가는 생각의 씨앗을 제공해왔다. 근대 과학시대 이후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변화에 맞는 윤리와 철학을 재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도에 비해 2000여 년 전 성립한 종교 변화는 더뎌, 정보혁명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윤리와 세계관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뇌과학과 명상, 생태적 가치와 윤리 등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신문화와 조응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종교는 윤리.철학의 문제를 외면하고 신앙으로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윤리.철학을 도외시한 채 신앙에만 몰두하는 종교는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정신문화를 감당하는 주체로서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영원불멸의 진리가 아니라 당대의 당면한 과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했던 부처, 공자, 예수의 언행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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