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한 농가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이 작업 중인 모습.
[한라일보]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은 농가 상황도 만만치 않다. 제주에선 여러 작물로 계절성 농업이 4계절 내내 지속되고 있는데, 내국인 근로자의 빈 자리는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다. 합법적인 고용 제도가 있지만 대규모 선과장과 농장, 영세 농가에 등에선 불법 고용이 빈번하다.
|제주 경제 버팀목 농업, 인구 감소·고령화로 인력 부족 현상 뚜렷
특히 농촌에선 무사증으로 입도한 뒤 기한 내에 출국하지 않고 불법 취업을 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도내 미등록 외국인이 취업한 사업장을 업종 별로 보면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건설업, 요식업, 제조업 등의 순으로 분포하고 있다. 농민들과 이주민단체는 "제주 농촌 경제를 이끌어가는 건 합법 노동자가 아닌 불법 노동자"라고 입을 모았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약 4만 평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는 A(62)씨는 "일년 내내 농사를 지으며 한가할 땐 5~6명, 바쁠 때는 70여 명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며 "이 사람들이 다 합법이겠나"고 되물었다. A씨는 또 "농번기에 외국인들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쳐야 하는데 외국인 반장(브로커)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인근에 20여 농가가 있는데 미등록 외국인을 안 쓴 곳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고용하려면 그 안에 불합리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우선 사람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고용 절차와 방식도 비합리적이다. 미등록 외국인 고용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전화 한 통화면 되니 간편하다"고 덧붙였다.
제주시 한경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B씨(69)씨는 "일손이 필요한 시기 또는 당일에 반장에게 연락하면, 반장이 관리하고 있는 외국인 팀이 농장에 도착해서 일을 하는 방식"이라며 "제주도 농사는 거의 쉬는 시간(농한기)이 없다. 서부지역은 특히 월동채소, 초당옥수수, 봄 감자 등의 작물 재배가 계속 돌아가는데, 장기 고용 또는 일용직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도내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제주에 잔존한 미등록 외국인들은 현재 100% 완전 취업 상태라고 본다. 농촌에선 대부분이 관광 비자(무사증)로 입도했다가 숨는 사례"라며 "무사증이 재개되면서 출입국에서 단속한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이) 숨어버리면 그걸 어떻게 잡나. 또 한창 작업 중인 논밭에 공무원이 들어가서 단속이 되겠나. 그 사람들 생계인데"라고 덧붙였다.
|왜 불법이 많을까?… "계절근로자 숫자만 늘리민 된다고?"
농촌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고용허가제도와 계절근로자 제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두 제도를 활용해 노동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일손 부족 해결에 실효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사업체(농가) 당 고용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 5~6명에 불과해 일손 자체가 부족하다. 올해 5월 기준 E-9(고용허가제) 비자와 H-2(방문취업) 비자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 수는 436명,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수는 745명이다.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농가 1곳 당 고용된 근로자 수는 약 1.7명에 불과하다.
계절근로자 배치 인력 역시 수요에 크게 못 미쳤다. 양 행정시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시의 경우 49농가에서 130명을 신청했지만 실제 10농가에 18명이 배정됐다. 서귀포시에선 16농가에서 34명을 신청해 승인됐지만, 현장에는 6농가에 8명이 실제 배정됐을 뿐이다.
특히 농업 부문에 특화된 외국인 근로자 공급 제도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농가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농업 현장에선 재배 작물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인력 수가 각기 다른데, 사업 규모 또는 재배 면적에 따라 3개월(단기 취업·C-4 비자) 또는 5개월(계절근로·E-8 비자)로 기한이 한정된 인력을 배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제도를 이용하면 각 농가들은 인력이 필요한 시기보다 훨씬 짧거나 긴 기간 동안 근로자를 의무 고용해야 한다.
농업에서도 업종 별로 사정이 갈린다. 축산의 경우 1년 내내 고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고, 쌀 역시 밭작물과 달리 기계화율이 높다. 그러나 과수 등 밭작물과 농작물은 노동력을 1년 내내 사용할 수도 없으며 기계화율도 더디다. 제주에는 이러한 농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다. 재배 작물 특성 상 일용 또는 임시 근로자의 필요성이 높은 것이다. 마늘·양파의 경우 수확기에 집중적으로 인력이 필요한데, 이 기간은 길어도 3주를 넘기지 않는다고 농업인들은 설명했다.
|고용허가제·계절근로자 제도?… 농민들 "농업 현장 모른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농사를 짓는 C씨(73)는 "계절근로자를 늘리는 게 마치 인력난 해소 특효약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데, 농업 현장을 한창 모르고 있다"며 "고용허가제나 계절근로자로 들어온 애들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 것 같다"며 "반면 불법(미등록 외국인)은 고용도 쉽고, 몇몇 반장들은 면접도 볼 수 있게 해주니 신뢰가 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공식적으로 밭을 임대해서 경작하는 문화도 여전히 남아 있고, 품앗이 하듯 인력을 돌려 쓰는(빌리고 빌려주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농한기 없이 4계절 내내 농사를 짓는 복합 농가에선 경우 장기간 고용을 원하기도 한다. 지난 6월 서귀포시 인근에서 만난 한 인력 중개업자는 "한 농가에서 미등록 외국인을 길게는 수 년 이상 함께 먹고 살며 일하는 케이스도 있다. 길게는 최대 8년 이상 데리고 있는 곳도 봤는데,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물론 불법이지만 법을 다 지키면 비자 갱신, 거주권 취득 등 절차가 복잡한데 농사 짓는 어르신들이 지키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