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일의 승전 역사 을묘왜변 현장을 가다 5 ] (4)문화기억으로 전승하는 제주을묘왜변 승전이야기 (상)

[제주 유일의 승전 역사 을묘왜변 현장을 가다 5 ] (4)문화기억으로 전승하는 제주을묘왜변 승전이야기 (상)
군사조직체계도 없이 지역공동체 협력으로 왜구 격파
  • 입력 : 2022. 09.06(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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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관아 내 망경루 전경.

제주 유일의 승전사인 을묘왜변 활용 방법 모색
답사길·원도심 여행 연계 등 스토리텔링 개발 필요


화북포구 일대에는 별도환해장성을 비롯해 별도연대, 화북진지, 큰이물, 해신사, 곤을동 환해장성 등 오래시간을 거쳐 오면서 시대마다 달리하는 유적들이 산재해 있고, 제주사람들의 지난 삶과 이야기들이 궤적을 이룬다. 이 일대를 걷고 있다 보면 수많은 역사적 이야기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 중의 하나는 을묘왜변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7년 전에 제주에서는 을묘왜변이 일어났다.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왜구는 서·남해 일대에 끊임없이 도발했고, 지역의 읍성, 성곽, 봉수대 등 방어시설들은 왜구 침입과 관련이 있다. 1555년 명종 년에 왜구는 영암을 거쳐 제주로 들어와 제주목 주성을 둘러싸고 3일간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구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고, 방어시설과 군사조직체계도 완벽하게 완성되지 못한 상황 속 민·관이 협동해 승전했다는 것은 지역공동체 협력이 굉장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기에 지역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세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할 수 있다.

치마돌격대 역사기행 답사길 지도.

역사적으로 승전의 역사는 국가와 국민의 공동체 기억으로 부상해 왔다. 수많은 전쟁은 국가의 존폐와 국제질서 변동과 관련이 있는데, 국경을 기반으로 지정학적 실체를 가진 국가는 다른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면서 내부의 균질적 공간화와 국민통합, 국가 존재의 타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고, 이는 수많은 승전 관련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로 나타났다. 특히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영웅 탄생을 통해 그 서사구조를 완성한다.

한국에서도 임진왜란과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는 상당하다. 1960년대 만들어진 광화문 동상을 비롯해 현재까지 만들어진 영화는 1962년 유현목 감독의 ‘임진왜란과 영웅, 이순신’을 시작으로 10여 편이나 된다. 2005년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시청률이 33%가 넘었다. 올해에는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이 상영됐다. 이런 콘텐츠들은 국민들의 정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데 일정 역할을 한다.

2013년에는 직접 관련성이 없지만, 이순신 이름을 활용한 ‘최고다 이순신’을 비롯해 2005년 ‘천군’과 같은 3~4차 가공물이 나타나기도 했다. ‘천군’은 28세에 무과에 떨어진 이순신이 방황하는 4년 동안 남북한 군인들이 시간여행을 가서 이순신을 훈련시켜주는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사용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선보였다.

현재 이순신이 치렀던 여러 전투들은 하나의 축제로 거듭나고 있기도 하다. 명량대첩, 한산대첩, 노량대첩 등을 겪은 지역들에서는 관련된 축제들을 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 이런 축제들은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도모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주 유일의 승전사인 을묘왜변의 역사문화자원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해남, 진도, 통영, 남해, 여수 등에서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에 관심을 확대시키고 있다. 같은 을묘왜변을 겪은 영암에서는 영암읍성을 비롯해 의병 영웅 양달사 일대기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에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영암읍성은 약 2000m(토성 1500m, 석성 500m)로 조선 초기 경 축조됐으나 한국 전쟁 시기에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 구간만 남아있으며, 일부에서는 민가 담장이나 축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1년 영암도서관 뒤편 석성 부분 35m를 복원해 보존하고 있으며, 최근 영암읍성을 중심으로 월출산과 연계해 달맞이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웅 양달사와 관련해서는 1차적으로 장독샘과 시묘공원이 있다. 장독샘은 장군정이라 부르는 우물인데, 을묘왜변 때 이곳에 양달사 장군이 장군기를 꽃아 물을 솟아나게 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유적으로 정비돼 있다.

영웅 양달사는 제주주부를 지낸 양승조와 청주 한씨에서 영암군 도포면 봉호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시묘는 현재 봉호정에 있다. 영암은 이곳 시묘 장소를 공원으로 확대하는 사업을 수행중이다. 이외에도 양달사 의병장 표준 영정 및 동상 제작 건립, 양달사 의병장 동화발간 및 글짓기 홍보, 양달사 장군배 전국 궁도대회 개최, 영암성 대첩 기념일 지정 및 기념사업 추진, 영암읍성 보존운동 전개, 장군의 붉은 깃발 공연 등 여러 가지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 발굴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조선 최초의 의병장과 의병활동의 기원이 영암에서 비롯된다는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주민 자긍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 을묘왜변은 어떠한가? 1000여명의 왜구를 파적해 대승을 거둔 사건임에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이야기나 매개체가 많지 않다. 남수각 다리 위 작은 표지석 하나와 을묘왜변 대첩을 그린 벽화만이 을묘왜변이 있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최근에 을묘왜변에서 활약한 치마돌격대의 김성조 건공장군에 대한 조명과 스토리텔링 등이 문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제주성과 남수구 터에는 그날의 치열한 전투를 이끌었던 치마돌격대의 도전과 용맹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제주목관아지에 있는 망경루가 을묘왜변의 승전과 관련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다가 2006년에야 복원됐다는 것을 모르는 주민들도 많다. 우리의 주변 속에 역사는 이렇게 숨겨져 있는데, 세대를 거치면서 잊히는 역사가 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민들과 후세대에게로 이어줄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간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되고, 활용하게 되는데, 이때 간접 경험은 역사문화자원과 콘텐츠를 통해 매개되고 이것이 바로 문화적 기억을 통해 연결된다.

승전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기념의 반복은 한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공동체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정신적 힘이 됐기에 승전을 기념하고 역사문화자원화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피해 중심의 역사 인식이 일정부분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승전을 기억하는 일을 잊고 있는 듯하다.

을묘왜변을 비롯해 치마돌격대를 대상으로 한 역사문화자원화와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역사문화자원화는 문화원형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러한 콘텐츠는 1차, 2차, 3차 콘텐츠 개발로 이어지면서 생태계를 이루기도 한다.

별도환해장성에서 별도연대, 화북진지, 곤을동 환해장성, 별도 사라를 거쳐 제주성지와 남수구터, 제주목관아지로 이어지는 답사길을 개발할 수도 있고, 제주성지와 제이각, 남수구터, 제주목관아지로 이어지는 답사길을 원도심 여행과 연계해 개발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장소들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필요하다.

현재 을묘왜변 및 치마돌격대와 관련된 콘텐츠들은 영상과 동화책 정도이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제작한 ‘조선 최대의 왜구 침략 1555년 을묘왜변’을 비롯해, 나주김씨제주도종친회에서 발간한 ‘김성조 건공장군 행장’, 전기 동화 ‘을묘왜변의 영웅, 김성조 장군’, 제주연구원에서 발간한 ‘숨겨진 역사유랑, 치마돌격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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