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월정리다 보니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커피값을 안 내도 되고, 다른 하나는 지인들을 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이 있어 제주에 오는 반가운 벗들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이 빠듯하다 보면 "왔다 간다"고 전화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초 갑작스레 월정리에 카페를 열고 일주일에 두어 번 나도 나가 앉아 있게 되니까 카페 구경 삼아 자연스레 나를 만나러 오는 지인들이 늘었다.
사실 카페를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은 이병률 시인이었다. 그는 카페가 개업을 하기도 전, 내가 백 년 된 제주 구옥을 리모델링하고 있을 때 소식을 듣고 달려와 엄청 훈수를 하고 갔다. 시인이자 여행작가로 본래 세계 여행을 많이 하고 좋다는 곳을 일 삼아 다니는 지라 공간 감각과 장소에 대한 젊은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니 척 보고는 할 말이 많았던 셈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 창은 밖에서 주방이 보이게 이렇게 내시고요. 여기 턱은 하나 없애고, 가능하다면 화장실은 밖으로 빼는 게 좋겠어요."하는 식이다. 나는 일부 그의 의견을 반영해 가능한 촌집을 그대로 살려서 생전 해보지도 않은 카페를 덜컥 오픈하게 됐다.
오늘 기분이 좋았던 것은 서울에서 '한국 다큐의 대모'라 불리는 김옥영 작가가 오셨기 때문이다. 한 장의 스케치 같은 단편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분은 내가 등단 직후 오규원 선생님 댁을 찾아갔을 때 부엌에서 과일과 과자 등을 내왔고, 이내 방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단아하고 단단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오규원 시인의 부인이자 시인이었으며, 나는 그때 두 분의 시를 다 좋아하는 신진 시인이었다. 그해가 거의 저물었을 때 한 번 더 선생님 댁에서 뵌 적이 있다.
4·3과 관련한 다큐를 찍는 일로 제주에 왔다가 내가 하는 카페를 일부러 찾아온 김옥영 작가는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71세의 백발의 여인이 되어 다시 본 그분에게선 남들의 호감을 받고 지지를 얻고 있는 사람의 행복감과 그에 따른 고독감 같은 게 감돌았다. 두 시간쯤 기분 좋은 멋진 오후를 보내며 함께 나눈 우리의 이야기는 즐겁고 상큼하며 옛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촉촉한 재미가 좋았다. 최근에 어디선가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그분은 작가로서 세상을 향해 말한다는 것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내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젊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훌륭하게 만들라고 했었다.
그저 그런 선생인 나도 가끔은 제자들의 작품이나 생각, 행동에 끼어들지만 내가 선생의 자격으로 딱 부러지게 그런 말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야기는 언제나 삶 또는 '인간'으로 돌아간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