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를 꼽는다면 당연 황희 정승을 말할 것이다. 황희 정승은 태평성대 문화통치기였던 세종대왕 집권 시기에 재상을 18년 동안이나 지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도 갑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본인을 비롯해 아들과 사위가 저지른 뇌물수수, 간통, 부패, 갑질 등 좋지 않은 물의를 빚어 처벌을 받은 사실들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황희 정승의 사위인 서달 사건은 갑질의 대표적 사례로 유명하다. 이 사건은 지나가던 하급 관리가 서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러 세워 때려죽인 일을 말하는데, 황희는 그가 사위라는 이유로, 맹사성은 그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을 덮고 가해자를 바꿔치기 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본다면 금수저가 갑질로 하급 공무원을 때려죽이고 장인어른 국무총리와 친분이 있는 부총리를 등에 업고서 보고서 조작으로 증거를 인멸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건이 현대에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면 '세기의 사건'이라며 대서특필됐겠지만,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이처럼 갑질은 과거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됐다. 신분제에 기인한 것을 비롯해 국가 간 제국주의 시대에서도 그랬고, 산업화가 급부상 될 때 노동자와 일부 사측 간의 갑질은 노동자의 권익을 이뤄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 갑질은 사회가 세분화되고 복잡화 됨에 따라 사람 대 사람, 기관 대 기관, 민간법인 대 법인, 사람 대 기관 혹은 법인 등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2019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이나 오너리스크와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은 탈법 경영 행태의 한 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도권에서 징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공무원 황제 의전, 공무원 간의 갑질, 예산편성과 집행에서의 갑질 등도 심심찮게 많이 표출돼 나오고 있다.
특히 제도를 집행하는 기관대 기관에서 일어나는 교묘한 갑질은 조직사회를 병폐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론 입법기관이 견제라는 의미로 행정기관의 권한을 제한한다던가, 한편 행정기관이 지도감독이라는 명분으로 산하기관에게 제도권 안에서 예산과 형평성 없는 규정을 제한하면서 은근히 이뤄지는 갑질 역시 상하 조직 간의 신뢰를 상실해 버리는 꼴이 됐다. 얼마 전 SNS 매거진에서 공무원의 갑질이 사라질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는 국민이 낸 세금의 집행권을 가지고 권한과 제도 남용에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글도 동의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을 비롯한 일반 법인에서도 청탁금지법을 비롯한 행동 강령, 이해충돌 방지법, 고충 심의, 폭력·갑질 예방, 성인지 감수성 인지 등 많은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집행 당사자가 지도감독인지, 견제인지, 사회적 규범인지를 모르고 하는 얕은 집행 그 자체가 갑질로 비춰질 수 있는 것 같다.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