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바람이 허락하는 순간, 가장 위험할 수 있다

[김완병의 목요담론] 바람이 허락하는 순간, 가장 위험할 수 있다
  • 입력 : 2022. 10.20(목)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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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 점 바람 없는 날, 쇠백로가 한가로이 몽돌 해변에서 깃털을 다듬다가 어린 매에게 습격당할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백로류 중에 몸집이 작은 쇠백로이지만, 다 자란 상태였다. 주로 조간대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밀물 때에는 갯바위나 곰솔 위에서 몸단장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여러 마리가 모여 있거나, 홀로 떨어져 있을 때도 많다. 쇠백로는 혼자서 여유롭게 부리로 깃털을 고르고 다리를 들어 얼굴을 긁기도 하던 터라, 천적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줄이야. 어린 매는 쇠백로를 낚아채는 데 실패했다. 쇠백로가 곧바로 날아오르지 않고 수면 아래로 피신했다. 매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옆에 있던 쇠백로 세 마리가 합세해 매에 대항하기 위한 저공 편대를 갖췄다. 하마터면 어미가 어린 녀석에게 낭패를 당할 처지였다. 어미 수컷 매였으면, 곧바로 희생됐을 것이다.

섬사람들에게는 비 오는 날보다 바람 부는 날이 더 무섭다. 비를 맞으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바람이 세면 모든 걸 멈춰야 한다. 파도가 높으면, 고깃배도 여객선도 움직일 수 없으니 모든 일정이 꼬일 수밖에 없다. 태풍철이나 겨울철이 아닌 한참 때에 바람 불고 먹구름이 끼면 정말 큰일이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갈매기도 매도 비행을 멈춘다. 날아봐야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다. 바람이 허락할 때까지 배고픔을 참아야 하지만, 잔잔해지면 물고기들에겐 비상이다.

한 때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풍선은 풍향과 풍속에 따라 항해해야 했다. 바람이 좋냐 강하냐는 당일뿐만 아니라 며칠 후까지 알아야 했다. 승객과 사공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가는 여정이어서 눈을 감고 잘 수 없었다. 해상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하늘도 막지 못한다. 중간에 후풍도(候風島)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면 추자도에 정박해 바람이 잔잔해지길 바랄뿐이었다. 1273년 삼별초의 난과 1374년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각각 제주도로 향하던 김방경과 최영도 추자도에 잠시 머물렀다. 제주도에 출장을 왔던 청음 김상헌도 한양으로 복귀하던 1602년 1월에 폭풍을 만나 추자도 사람들을 만났다.

새들에게도 추자도는 중간기착지로 정말 좋은 곳이다. 추자도 곳곳에서 관찰되는 백로들도 추자군도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며, 슴새와 지느러미발도요도 추자도 해역을 비행한다. 추자도는 바람, 새, 사람이 맘껏 머무는 곳으로 변한 지 오래다. 바람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불어야 더 좋다. 쇠백로도, 매도, 섬사람도, 육지 사람도 그걸 안다. 조용한 바람 대신에 희망을 담은 바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새들이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어부들도 더 먼 곳까지 출항해서 만선이 돼 돌아올 수 있다. 바람 잘 날이 없는 게 세상사인지라, 맑은 날에도 매서운 바람이 분다. 엄한 바람이 불어 닥쳐 섬사람들의 바람마저 습격당하지 않으려면 전열을 정비할 때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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