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58)시작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황학주의 제주살이] (58)시작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 입력 : 2022. 11.01(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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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나이 들면 만나던 사람을 계속 만나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제주살이 10년 차가 되었어도 내가 서울에 살며 잡지 '발견'을 펴내는 줄 아는 사람이 아직도 꽤 있고, 제주에서는 내가 벌써 제주를 떠난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나이 들면 친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려 들지 않고, 교류나 소통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사귀는 사람이 적어진다 해도 우리는 사귀는 일을 시작할 수 있으며, 나이 들수록 사람 만나는 일은 더욱 소중한 일이 되지요.

그래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어서 더욱 고맙고, 부족한 나를 깨우쳐 주어서 고맙고, 때론 나를 부끄럽게 해서 고맙습니다. 노래하는 새라면 좋겠다고 해도 바람이라면 좋겠다고 해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맞장구쳐주는 게 친구일 것입니다. 우리는 외돌토리가 아닙니다.

한 강연회에서 '성공'에 대한 정의를 묻는 어느 여대생에게 워렌 버핏이 말했다지요. "젊어서는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나이 들자 '내가 사랑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야말로 성공이더라."고요. 사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것도 기적이며, 누군가의 빛이 되어 사랑받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랑! 당신은 길에 있기도 하며, 집에 있기도 하고, 사무실에 있기도 하며, 하늘에 있기도 합니다. 당신의 사랑에 기적처럼 반응하며 살고 싶습니다. '기적'을 조금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요즘 더욱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은 벗들과 제자들을 믿는 것이 내 삶이며, 그들이 잘 될 것이라 믿고, 건강할 것이라 믿고, 커다란 슬픔도 이겨낼 것이라 믿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몇 개월 동안 시 한 편 못 쓰고 못 보여주는 못난 제자도 이젠 믿고만 싶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노력해도 아직 갖지 못한 것,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야말로 나를 밝혀주는 빛이며 비전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반원을 가지고 다른 반원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걸 꿈이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나도 당신도 가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나이 들어도 우리는 또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나요. 사실 가진 것이 없어야 부처이고, 예수이지요.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헤밍웨이의 말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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