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 2부 한라산-(13)백두산 이름은 어디서 왔나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 2부 한라산-(13)백두산 이름은 어디서 왔나
백두산의 어원상 의미는 ‘꼭대기에 호수가 있는 산’
  • 입력 : 2022. 11.22(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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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박달이라는 말은 한자로 백산(白山)이라고도 썼다. 여기서 '백'은 호수라는 뜻이라는 건 지난 회에 상세히 설명한 바대로다. 여기서 '달'은 고구려어로 산(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산을 고구려어로 달이라 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천만다행으로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 1145년(고려 인종 23) 김부식 등이 편찬하였다. 각 주와 군, 주요 읍 등의 위치와 연혁에 치중한 지리책인데, 9권 가운데, 제3권부터 제6권까지는 지리지이다. 이 지리지에는 지명을 고려어로 기록하면서 과거 고구려 시대에는 어떻게 불렀는지 대조하는 방식으로 상세히 기록해 있어 고구려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북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이 부분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겐 좀 읽기 불편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을 고구려어로 '달'이라 했다는 말은 우리말의 어원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하고, 자주 등장하므로 한번 익혀 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예컨대,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토산현본고구려식달(土山縣本高句麗息達)'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말은 '토산현은 본래 고구려의 식달이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구조는 '토산=식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토산의 산과 식달의 달이 대응한다. 즉, '산=달'이 되는 것이다.

'부산현일운송촌활달(釜山縣一云松村活達)'이라는 문장도 나온다. '부산현은 송촌활달이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구조는 '부산=송촌활달'이다. 부산의 산과 송촌활달의 달이 대응한다. 즉, '산=달'이다.

'공목달일운웅섬산(功木達一云雄閃山)'이라는 문장도 나온다. '공목달은 웅섬산이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공목달=웅섬산'으로 되어있다. 공목달의 달과 웅섬산의 산이 대응하고 있다. 즉, '달=산'이다.

'아산성목갓달홀(梨山城木加尸達忽)'이라는 문장도 나오는데, '이산성은 모갓달홀'이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이산성=목갓달홀'의 구조다. 이산성의 산과 목갓달홀의 달이 대응한다. 역시 '산=달'이다.

박달의 '달'은 고구려어로 '산'
현대국어에서도
달=산, 달동네=산동네
白頭山의 ‘두’는 퉁구스어 산꼭대기
백두산은 머리가 하얀 산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고려 시대 즉, 1145년경에 산(山)이라는 말은 고구려 때에는 달(達)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약간 지엽적인 말일 수도 있으나 고려 때에는 이미 산이라는 한자어가 상당히 일반화되어 '달'이라는 순우리말이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달'이라는 말이 '산'을 지시하는 고구려어라는 데에 상당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고구려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그런 생뚱맞은 말이 어딨느냐는 것이 둘째 이유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처럼 고전에서 고구려어를 많이 발굴하고 재구성해 내고 있다. 산을 고구려말로는 '달'이라고 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방의 여러 언어에서 이와 같은 계열의 어휘가 산재한다. 중세 몽골어에 '데레', '디라', 부리야트어에 '데레', 칼미트어, 오르도스어에 '데'가 '높은 곳'을 뜻한다. 산의 의미로 돌궐고어 '탁', 돌궐어 '닥', 야쿠트어 '티아'가 타이가 또는 숲을 지시하는 말로 쓴다. 이 '달'이 가지는 뜻과 관련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현대국어에서도 이 '달'이라는 말은 엄연히 살아 있다. '달동네'가 그 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달동네를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의 높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풀이하면서 비슷한 말로 '산동네'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달'과 '산'이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사례다.

백두산은 그 외에도 오랜 세월 백악(白岳), 박달(博達), 박달(朴達), 태백산(太白山), 태백산(太伯山) 등으로 불렀다. 이 백, 박 등은 모두 같은 음으로 퉁구스 고어 '페이', 중세 이전 만주어로는 '바쿠'로 발음했다. 뜻은 모두 호수를 가리킨다.

한편 백두산이라는 말은 위에서 예를 든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같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최근에야 쓰기 시작한 지명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부터 608년 전, 삼국유사가 쓰인 지 269년 후인 1414년 조선 초에 이미 백두산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 14년 8월 21일(신유) 조 '예조에서 산천에 지내는 제사에 대한 규정을 상정하다'란 기사에서 '경기의 용호산·화악, 경상도의 진주 성황, 영길도(永吉道)의 현덕진·백두산은 모두 옛날 그대로 소재관에서 스스로 행하게 하고, 영안성·정주 목감·구룡산·인달암은 모두 혁거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백두산이라는 지명이 그 이전부터 널리 쓰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 문제를 논하면서 백두산이라고 쓸 수 있단 말인가.

백두산을 멧부리에 흰 부석으로 덮여 있어 늘 희게 보이므로 백두산이라 한다는 해석을 자주 보게 되지만, 지금까지 '백'이 모두 호수라는 뜻으로 사용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흰'의 뜻으로 썼다는 것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두산의 '두'라는 글자를 보면 더욱 의심하게 된다. 퉁구스 고어 '두'는 꼭대기 혹은 산꼭대기를 지시한다. 퉁구스어권의 에벤키어와 에벤어 '디', 만주어 데엔 혹은 '데레', 특히 남만주어 '덴'은 '키가 큰' 혹은 '높은', 올차어 '두우', 오로크어 '두우', 나나이어 '두에', 우데게어 '디'로 나타난다. 그러니 백두산(白頭山)의 두(頭) 역시 '머리'를 가리키는 뜻글자로서 쓴 게 아니라 '산꼭대기' 혹은 '높은'을 가리키는 '두'의 음차임을 알게 된다. 결국, 백두산의 어원상의 의미는 '머리가 하얀 산'이 아니라 '꼭대기에 호수가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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