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5] 3부 오름-(54)물이 솟아 습지와 물웅덩이를 만들어 낸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5] 3부 오름-(54)물이 솟아 습지와 물웅덩이를 만들어 낸 오름
정물오름과 송아오름, 돌궐어와 퉁구스어의 화석
  • 입력 : 2024. 08.20(화) 05: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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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름의 정물오름, 그 본디 뜻은?

[한라일보] 정물오름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다. 표고 466.1m에 자체 높이 151m 정도다. 돌담으로 정비한 샘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분화구 안 낮은 곳 해발 349m 정물샘이다. 주위 곳곳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상당히 넓은 못을 형성하기도 한다. 용출량은 상당히 많아 보인다.

정상에서 보는 사방의 경치는 절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북쪽으로는 이시돌목장이 넓게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도너리오름을 중심으로 문도지오름, 감낭오름, 원물오름과 남송이오름이 보이고, 그 사이를 마치 바다 같은 저지곶자왈이 물결치듯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당오름과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정물오름 분화구 내 샘, 비교적 물이 많이 솟아 나온다. 오름해설사 김미경

정물오름이라는 이름은 순우리말 같기도 하고 한자 말 같기도 하다. 알쏭달쏭하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 정수(井水) 오름이라 표기했다. 그 외 여러 문헌과 지도에 이와 같은 이름으로 표기했다. 같은 시기 대'정현지도', 이보다 조금 앞선 '탐라도', 그리고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에 같은 표기가 나타난다. 그보다 한참 늦은 1872년 '제주삼읍전도'에도 1899년 '제주지도'에도 정수악(井水岳)이라 했다. 이렇게 길게 이어지던 정수(井水)라는 표기가 1899년 '제주군읍지'에 정물봉(正物峯)으로 나타난다. 1954년 '증보탐라지'에서는 정수악(汀水岳)으로,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정수악(淨水岳)으로 표기했다.

오늘날 지도에는 정물오름으로 표기하면서 한자로는 정수악(井水岳)이라 한다. 고전에 나오는 정물오름의 표기는 정수악(井水岳), 정물봉(正物峯), 정수악(汀水岳), 정수악(淨水岳) 등이다.

정물오름 분화구 내 습지, 주위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김찬수



정이란 물 관련어, 정골물, 정구물, 정방폭포, 정수내 등으로 분화

이런 명칭 표기로 유추해 볼 때 옛날 제주인들은 오늘날처럼 '정물'오름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걸 기록자들은 어떻게 써야 하나 고심했을 것이다. '정물'의 물은 이곳에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으니 '물 수(水)'로 차자하는 데 별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정'이다. 물이 고이는 통이 형성되니 '우물 정(井)'이 적당한 글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기록자들은 이 '우물 정(井)'이 아무래도 마음에 켕겼던 모양이다. 이곳의 샘은 인위적으로 판 우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매하게 표현하느니 발음 그대로 쓰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추정하는 것은 발음은 '정' 하나인데, 표기는 井(정), 正(정), 汀(정), 淨(정)으로 4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역설적으로 '정'이란 발음이 한자어에서 온 것이 아니란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정’이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역사 지리학적으로 제주도와 관계가 깊은 여러 언어에서 물과 관련된 어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물오름의 '정'과 발음이 가장 유사한 언어로는 우선 돌궐어를 들 수 있다. 돌궐어에서 '정-'은 물과 관련해 '깊은', '물웅덩이', '못' 등의 뜻으로 쓴다. 돌궐어 '정글'이 대표적이다. 몽골어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할하어에서 '정겔'이 못을, '총굘'이 '깊은'을 의미한다. 칼미크어에서도 '정갈'이 '깊은'을 의미한다. 퉁구스어권의 에벤어에서 '정인'이 연못 혹은 물웅덩이를 지시한다. 특히 퉁구스어에서는 '정'보다는 '송'에 가까운 음으로도 많이 분화했다. 제주도의 고대인 중에는 정물오름에서 보듯 물이 솟아 습지나 물웅덩이 혹은 못을 형성한 곳을 '정-'이라 했던 집단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애월읍 고내리 정골물, 금능리 정구물 혹은 정구수처럼 여기에서 분화한 물 관련 지명이 산재한다. 서귀포의 정방폭포, 그 인근의 정수내도 마찬가지다. 고대어가 화석처럼 박혀 있다.



물이 스며 나와 못을 이룬 송아오름, 퉁구스어에 뿌리

정물오름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8.4㎞ 지경에 송아오름이 있다. 표고 104m, 자체높이 29m로 야트막한 오름이다. 그런데 이 오름은 동쪽 기슭 도로변과 서편에 못이 있는 게 특징이다. 동쪽 못은 과거 식수로 썼다고 한다. 이 오름은 지역에서 송아오름 이외에도 송오름 또는 송악(松岳), 송와오름, 송화오름 또는 송화악(松花岳)으로도 부른다.

이 이름에 대해 어떤 이는 잘게 부서진 화산쇄설물을 제주에서 송이라 부른데 착안해 '송이'에서 왔을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해송이 많은 것으로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송아지에서 온 것으로 본다는 이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제주어 혹은 국어로는 도저히 그 뜻을 찾아내기 어렵다. 북방어 그중에서도 퉁구스어의 '송-'에서 기원한 말이다. 물이 솟아 습지나 물웅덩이 혹은 못을 형성한 오름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김찬수 소장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796번지에 정연이라는 샘이 있다. 도로를 바짝 붙여 개설하는 바람에 샘터가 아주 좁아졌다. 그러나 과거 물맞는 장소로 이용했고, 고인 물은 가축이 먹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수량도 풍부하고 습지도 넓었던 모양이다. 이 일대를 또한 정연동산이라고 한다. 이 지명들도 북방어 특히 퉁구스어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정물오름, 송아오름 등과 같은 어원이다. 다만, 정연이라는 이름은 퉁구스어 중 만주어의 '정인'에서 유래해 오랫동안 쓰던 것이 한자로 기록하면서 '연못 연(淵)'으로 음차해 오늘날의 '정연(井淵)'이 됐다. 정물오름과 송아오름은 물이 솟아 습지나 물웅덩이 혹은 못을 형성한 오름이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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