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 2부 한라산-(14)백록담이 무슨 뜻?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 2부 한라산-(14)백록담이 무슨 뜻?
백록담의 본디 의미는 ‘호수+호수+호수’
  • 입력 : 2022. 11.29(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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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사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백록담'의 '백'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다. '백록담'을 고대인들은 이같이 '바쿠(faku)'로 불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어떤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호수'를 지칭하기 위해 이렇게 불렀다고 할 수 있다. 문자 표기는 물론 한참 후대에 일어난 일이겠지만 기록하는 사람이 'faku'를 '백(白)'으로 받아 적었을 수도 있고, 처음엔 '박(泊)'이라 쓰다가 이게 불편해졌거나 우리 언어 감각과 동떨어진다고 판단해 '백(白)'으로 쓰면서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록'은 어디 왔나? 백록담의 지명유래에서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록'은 '사슴'이라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것은 한자 록(鹿)이 '사슴 록'이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결과 '흰 사슴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놀았다'거나 '신선이 이곳에서 백록주를 마셨다' 같은 황당무계한 풀이가 나오는 데 있다.



흰사슴은 백색증 돌연변이
별도의 종이 아니라
떼를 지을 수 없어


노르웨이 잼트란트의 백색증 순록. 사진 제공 오스카 칼린

실제 백록담의 이름 유래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흰사슴[白鹿]이 이곳에 떼를 지어서 놀면서 물을 마셨다는 데서 백록담(白鹿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신선들이 백록주(白鹿酒)를 마시고 놀았다는 전설에서 백록담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라고 나온다. 이런 설명은 생물학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거짓임이 나타난다. 흰사슴은 별도의 종이나 계통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슴과 달리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적으로 색소합성능력이 결여된 유전적 백색증을 가진 사슴을 말한다. 이런 개체는 유전적 이상이므로 태어날 확률이 대단히 낮아 떼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쑹 가리→쑹 가리 우라
→松花江, 소나무와는 관련 없다


본란에서 이미 여진족은 백두산 천지를 쑹가리 노올 또는 압카이 노올이라고 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송화강(松花江)은 여진어 쑹가리 우라(Sunggari ula)의 한자 표기다. 만약 이 명칭을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소나무 꽃이 많이 피는 강'이라 할 수도 있고, '소나무 꽃이 아름다운 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송화란 국어에서 소나무의 꽃가루를 지칭하거나 소나무의 꽃 그 자체를 지시하기도 하며, 빛은 노랗고 달착지근한 향내가 나며 다식과 같은 음식을 만드는 데 쓰므로 어떻게든 소나무와 꽃을 엮어 그럴듯한 풀이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이 '송화강'의 '송화'는 소나무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이 말은 여진어 '쑹가리 우라'의 음차이기 때문이다. 여진어 즉, 만주어에서 '쑹'은 하늘이라는 뜻이다. '가리'는 만주어 '쿠레'의 변음으로 호수를 나타낸다. 이 말은 퉁구스어에서 다양하게 파생했는데, 우리말에서는 호수 혹은 큰 강을 지시하는 가람에 대응하는 말이다. 계곡이나 강을 의미한다. '우라(ula)'는 남만주어 혹은 여진어에서 '큰 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쑹가리 우라'라는 말은 '하늘+호수+강'이 되어 '하늘 호수에서 내려오는 큰 강'의 뜻이 되는 것이다. 소나무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압카이 노올(Abkai noor)이라는 말에서도 압카이가 만주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비룡폭포, 송화강을 이룬다.

여기에서 '쑹가리 노올'과 '압카이 노올'의 '노올'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말은 특히 몽골어계를 구성하는 언어에서 보인다. 현재 영어알파벳으로는 'noor'로 흔히 표기한다. 이걸 '노올' '노루', '노르', '노오르', '누우르', '누루' 등 어떻게 발음할 것인지 모호한 게 사실이다. 사실 송화강이 주로 흐르는 퉁구스어권에서는 만주어 나리, 나나이어 니아로, 우데게어 나오로 나타난다. 그런데 몽골어권의 부리야트어, 칼미크어, 오르도스어에서 모두 노르, 다구르어에서 나우르, 몽골어에서 노르로 나타나 현재 만주어 노루(noor)와 매우 흡사하다. 현대몽골어에서는 'nuur'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 발음은 '노루'로 들린다.

그러므로 만주어에서 쑹가리 노올은 '쑹 가리'가 '천지(天湖)'를 나타내고, 여기에 다시 호수를 의미하는 노올이 덧붙었으므로 '하늘+호수+호수'가 되어 '천호호'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뜻을 갖는 두 가지 말이 덧붙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이중첩어라 한다.

그렇다면 왜 '하늘 호수'를 만주사람들은 '쑹 가리'라 하지 않고 '쑹가리 노올'이라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쑹+가리'라고만 해도 '하늘+호수'라는 뜻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말이다.



북방에선 호수를 노르라고 불러
바쿠→바쿠노르→백록담
순차적 명칭 변화


호수를 나타내는 '노르'라는 말은 만주지역의 퉁구스어에서는 나룻(에벤키어), 나루각(에벤어), 나리(만주어), 나로(나나이어), 나우(우데게어)로 나타는데, 이 형태는 '노르'와 다소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국어에 나타나는 '내'와 상당히 근사해진다.

그러나 몽골어권에서는 분명하게 '노르(몽골어 нуур, 영어표기 nuur)'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미 사용하는 '쑹가리'에 '노르'가 덧붙은 것이다. 이것은 아마 처음에는 '쑹 가리'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언어란 민족의 이동과 섞임에 따라 계속 파생하기 마련이다. '쑹가리'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곳에 다시 더욱 강한 세력이 밀려든 건 아니었을까?

백록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이 물가에서 흰 사슴이 물을 마시며 노는 광경을 봤거나 신선이 이곳에서 백록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白鹿潭(백록담)이라 작명했다고 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처음에 제주도에 온 사람들은 이 호수를 그냥 호수라는 뜻으로 '바쿠(faku)'로 불렀을 것이다. 여기에 다시 호수를 '노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바쿠노르'라고 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한자를 쓰는 사람들이 들어 왔을 때 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白鹿潭(백록담)이라 쓴 것일 것이다. 따라서 백록담 원래의 의미는 '호수+호수+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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