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대접받지 못하는 오름
[한라일보] 오름인지 아닌지 모르는 오름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오름 목록 368개 중에는 이 오름이 없다. 카카오맵에는 '두수오름'으로 표기돼 있다. 지역에서는 뒤시오름이라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2리(1812번지)에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오름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규모에 대해서는 공식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단편적인 기록을 모아 보면 표고 212m, 자체높이 62m 정도다. 이 기록이 맞는다면 결코 낮은 오름이 아니다. 오름의 평균 높이는 81m이며, 전체의 71.4%가 41~120m의 범위에 들어간다. 자체높이가 평균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체 368개 중 162위에 해당한다.

뒤시오름 정상에 바라본 돈드르 전경. 김찬수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현재는 일부 마을이 들어섰거나 대부분 밀감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드넓은 방목지였으며, 이런 지형적 특징을 활용해 1967년도에는 이 일대를 양마단지로 개발한 적이 있다.
이 오름의 지명은 후수악(後藪岳), 후수악(後首岳), 후웅악(後雄岳), 두수악(斗首岳), 두수악(頭首岳), 뒤시오롬 등으로 인근의 묘비들에 표기돼 있다고 한다. 후수악(後藪岳)으로 표기한 입장은 '뒤 후(後)'의 훈가자 '뒤', '덤불 수(藪)'의 음가자 '수'를 조합해 '뒤수오름'을 나타내고자 했다. 후수악(後首岳) 역시 '뒤 후'의 훈가자 '뒤'와 '머리 수(首)'의 음가자 '수'를 조합해 '뒤수오름'을 나타내고자 표기했다. 후웅악(後雄岳)은 '뒤 후(後)'의 훈가자 '뒤'와 '수 웅(雄)'의 훈가자 '수'를 조합해 '뒤수오름'을 나타내려 했다. 두수악(斗首岳)과 두수악(頭首岳)은 뜻과는 무관하게 한자의 발음만을 취해 '뒤시오름'의 유사음 '두수오름'을 표기하려 했다. 음가자 차용 방식이다.

오름 남서쪽에서 바라본 뒤시오름. 김찬수
여러 표기 중 특정 지명만 인정
이렇게 지역에서 실제 부르거나 주변의 묘비에서 채록된 이름들은 모두 '뒤시오름'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한자를 동원하기는 했으나 그 뜻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이 '뒤시'는 고유어임을 알 수 있다. 과연 고유어로 된 이 지명 '뒤시'란 무슨 말인가? 어떤 책에는 지역에서 말하는 음성형과 이런 차자표기를 고려할 때 '뒷술오름'이라 하다가 '뒤수오름'으로 소리가 바뀌고 다시 '두수오름', '뒤시오름'으로 바뀌었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뒷술오름'의 '뒷술'은 뒤쪽에 있는 숲이란 뜻으로, 뒤쪽에 숲을 이룬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라 했다. 이 주장은 위의 여러 지명 표기 중 후수악(後藪岳)만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제주어에서 구체적으로는 하천, 김녕, 난산 등에서 채록한 바에 따르면 가시덤불로 돼있는 언덕처럼 높은 지역을 '술'이라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즉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후수악(後藪岳)의 '수(藪)'가 '덤불 수'이므로 이 지명은 '뒷술오름'을 나타내려고 쓴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후수악(後首岳), 후웅악(後雄岳), 두수악(斗首岳), 두수악(頭首岳) 등의 표기에 나오는 '두(斗)', '두(頭), 그리고 '수(首)'와 '웅(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그저 단순히 음가자 혹은 훈가자 표기라 하고 '후수악(後藪岳)'이라는 표기만 선택적으로 중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 표기들을 종합해 보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뒤시'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라는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다만 이 고유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뒤시오름 정상의 감귤 과수원. 김찬수
‘돈드르’가 무슨 뜻?
본 기획 바로 전 회에서 성산읍 수산리와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똑같은 지명 '뒤꾸부니'가 사면(slope)이 퍼지고 평평한 오름이란 뜻임을 밝혔다. 여기에서 '뒤'란 말은 고대어로 '퍼지고 평평하다', '산의 평평한 사면'의 뜻을 지니는 말이었다. 지명이란 오랜 세월 전승하면서 조금씩 변하는데, 여기의 '뒷' 혹은 '뒤'란 발음도 점차 '앞'이 아닌 '뒤'를 연상시키면서 표기도 바뀌어 왔다. 뒤시오름이란 원래 '뒤시' 혹은 '뒤쉬'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오름'이라는 속성을 반영하는 언어습관이 정착하면서 '뒤시오름'까지 왔을 것이다. 뒤꾸부니오름처럼 위가 평평한 오름이되 구부러진 건 아니므로 '봉우리'임을 나타내는 '시'만을 반영한 지명이다. '시'란 '수리'의 축약형이다. 본 기획 걸세오름 편과 달랑쉬오름 편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오름은 위가 평평하다. 사람들은 이 오름 정상을 깎아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형이 바뀔 정도로 많이 깎인 건 아니다. 원래 위가 평평했다. 이 정상에서 마을 방향으로 바라보면 역시 드넓은 평원이다. 이곳을 '돈드르'라고 한다. 주로 효돈 사람들이 이곳을 방목에 이용했으므로 돈드르라고 한다거나, 돼지를 방목했었기 때문에 돈드르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토평이 있다. 이 지명도 '돗드르'에서 유래한다. '돈드르'는 '돗드르'와 같은 기원이다. '드르'는 '들'을 지시한다. '들'의 모음첨가 혹은 개음절화 현상이다. 여기서 '돗'이란 투르크어 기원의 '됄'에서 분화했다. 이 말은 아주 완만한 경사면을 말한다. 평지 혹은 들판을 지시하기도 한다. 제주 지명에 산재한다. 투르크어에서 '되즈' 혹은 '돼즈', 기타 아제르바이잔어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어, 위구르어, 키르기스스탄어 등 투르크어권의 여러 언어에서 유사하게 사용한다. '돗'이란 여기에서 기원한 말이다. '돗드르'란 유유히 흘러내린 한라산 사면 상에 형성된 넓은 평야라는 뜻이다. '돈드르'는 '돗드르'에서 돼지를 연상해 '돈드르'로 변한 말이다. 뒤시오름의 '뒤'도 같은 기원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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