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서 출발한 지명해독
[한라일보] 그 뜻을 알 듯 말 듯한 오름이 있다. 마보기와 하늬보기다. 도드라지지는 않으나 인근에서 분명하게 오름으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 형태를 갖추고 있다. 마보기는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록남로 광평입구교차로 동북쪽에 있다. 이 오름은 영아리오름에 이르는 탐방로 도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오름은 억새밭이 넓게 형성돼 있어서 가을의 경치로 본다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자체높이는 45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멀리 마라도, 가파도, 형제섬이 아스라이 떠 있고, 거대한 바위산 산방산이 반짝거리는 바위를 드러내 보인다. 이외에도 여기서 볼 수 있는 오름은 많다.

하니보기. 마보기 정상에서 촬영. 김찬수
여기서 북서쪽으로 960m 정도 떨어진 곳에 하늬오름이 있다. 505.7m이니 표고 559.7m인 마보기보다 약 50m 정도 낮다. 북쪽에는 영아리오름이 있는데 영아리오름과 하늬오름 사이에 하늬보기가 있다. 마보기에서 북북서쪽에 해당하는데 마보기에서 하늬보기까지는 약 740m 정도 떨어졌다. 마보기, 하늬보기, 하늬오름 세 개의 오름이 삼각형을 이루며 배치해 있는 셈이다. 참고로 하늬오름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오름 목록 368개 중에는 없다. 그러나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는 명기돼 있다.
마보기, 하늬보기, 여기에 더해서 하늬오름. 이 세 오름의 지명이 관심을 끈다. 평소 지명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이런 곳에 오면 그 지명의 뜻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는 '마보기'를 보통 '마뽁이'라 부른다면서 그 뜻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인근 묘비에 '남복악(南福岳)'이라 표기한 것을 발견하고는 '마'는 '남(南)'에 대응하는 것이니 남쪽을 일컫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복이'가 마파람이 많이 불어오는 오름이라고 풀었다. '보기'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라는 것이 흔히 '마파람'이라고 할 때 나오는 말이므로 이렇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보기'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자연스레 하늬보기는 하늬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오름으로 풀이하기 마련이다.

마보기. 영아리오름 남사면에서 촬영. 김찬수
복어가 왜 거기서 나와?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의 오름'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도 모자라 하늬보기와 함께 계절풍의 풍향 위치에 따른 특성으로 구분돼 이름 지어졌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말이란 이렇게 구를수록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붙고 또 붙기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럴싸하게 꾸며지기 마련이다. 이 오름이 주변의 오름에 비해 유난히 마파람이 많이 부는지, 계절풍의 풍향 위치와는 어떤 특수 관계에 있다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다만 인근의 묘비에 표기한 '남복악(南福岳)'의 '남(南)', 이 한 글자에서 출발한 것이 이렇게 불어나 이야기가 됐다.
이 세 오름의 지명은 다소 헷갈리게 됐다. 여기서는 표고 559.7m(카카오맵 기준)의 오름을 마보기, 592.3m의 오름을 하늬보기, 505.7m의 오름을 하늬오름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늬오름에 대해서 어느 책에는 1910년경 조선지지자료에 '상천리 복이산(上川里 福伊山)'이라고 표기됐다면서 '복이산'은 '복이오롬[보기오롬]'의 한자차용표기라 했다. 그런데 그 풀이가 기상천외하다. 즉, '복이[보기]'는 고유어 '복'(복어)에 명사형접사 '-이'가 덧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과 같은 형태를 한 둥그런 언덕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언덕을 보고 누가 복어를 떠올릴 것인가. 지명이란 일반이 공감하는 말로 지어지기 마련인데 왜 이렇게 특수한 어휘를 골라 지명에 사용했다는 것인가. 이 오름이 복어를 닮았나? 그러면서 하늬보기의 하늬는 '서쪽'을 뜻하는 말이며, '복이'는 역시 '복어'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마보기는 맛복이[마뽀기]라고도 하는데, '마'는 남쪽을 뜻하며, '복이'는 복과 같은 둥그런 언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마는 ‘ᄆᆞ르’, 보기는 ‘ᄇᆞᆰ이’에서 기원
지명은 유사한 특성끼리 묶이는 특성이 있다. 어떻게 보면 고대로 올라갈수록 단순하게 지리·지형적 특성만을 이름에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산은 산이요 강은 강이면 족했다. 그러던 것이 백두산, 한라산, 압록강, 한강처럼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백두, 한라를 전부요소라 하고, 산·강을 후부요소라 한다. 마보기니 하늬보기니 하는 지명의 '보기'는 후부요소인데 '보기'란 '복어'가 아니라 지형이 불룩하다는 뜻의 '불룩이'였을 것이다. 이 말은 고어형 '불'에서 점차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갔다. 전 회의 바농오름과 바리매 편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수많은 붉은오름, 밝은오름도 이 계열이다. '오름'이라는 후부요소가 덧붙기 전 혹은 오름이라고 하기엔 낮은 지형 정도의 뜻으로 'ᄇᆞᆰ이' 혹은 그 유사음으로 부르던 것이 축약되면서 '보기'가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는 'ᄆᆞ르'의 축약이다. '하늬보기'는 지명으로 볼 때 '마보기' 인근 좀 더 큰 마보기라는 의미로 '하니마보기'라는 지명으로 불렸을 수 있다. '하니' 혹은 '하늬'란 '한'의 연음이다. 이것이 축약되면서 '하니보기'가 된 것이다. 지금 일부에 '하니오름'으로 나오는 오름을 마보기 또는 '맛복이[마뽀기]'라고도 한다는 점으로 볼 때 이전에는 이 오름도 '마보기'라 불렸을 것이다.
하늬보기의 봉우리를 회오리봉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어 흥미롭다. '회오리'란 '회'+'올'로 추정된다. 오늘날 하늬보기와 하니오름을 독립적인 오름으로 보기도 하지만, 위가 평평하고 넓은 하나의 지형으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지형을 'ᄃᆞ르', '다래' 등으로 부른다. 이 말은 한자로 차용할 때 주로 '돌 회(回)'로 차자했다. 그러므로 '회오리'란 '돌오름' 혹은 '다래오름'의 한자차용과 고유어 결합이라 할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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