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3] 3부 오름-(142)바농오름과 늡서리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3] 3부 오름-(142)바농오름과 늡서리오름
아직도 ‘바농오름에서 바늘 찾기’식 지명해독
  • 입력 : 2026. 08.11(화) 03:00
  • 김찬수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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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연관 있을 거라는 믿음


[한라일보] 바농처럼 생겼나? 바농오름이라 불리는 신기한 이름의 오름이 있다. 바농이란 제주어 바늘을 가리킨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소재 표고 552m, 자체높이 142m의 오름이다. 이 오름은 산정에 원형 화구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지닌 복합화산체다.

바농오름. 바농오름과 늡서리오름 사이에 있는 돌문화공원에서 촬영. 김찬수

이 오름을 기준으로 남서 방향으로 줄을 지어 족은지그리오름, 큰지그리오름, 민오름, 절물오름, 개오리오름, 성진이오름, 물장올 등이 배열돼 있다. 직선거리 약 7㎞ 이내에 있다. 약 1㎞에 한 개씩 있는 셈이다. 더욱이 바농오름과 바로 연접한 족은지그리오름은 850m 정도 떨어져있고, 여기서 570m 떨어져 큰지그리오름이 있다. 오름 자락으로 본다면 그냥 붙어 있는 오름들이다. 연접한 족은지그리오름은 자체높이가 69m에 불과하다.

바농오름에 인접한 오름 중에 남동쪽 1.7㎞ 거리에 낮은 오름이 하나 보인다. 늡서리오름이다. 이 오름은 표고 488.9m, 자체높이 59m다. 바농오름에 비해서는 아주 낮은 오름이다. 더구나 이 오름은 원형 분화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구륜의 일부만 남아있는 형태다. 마치 초승달 모양이다.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에서는 가시 돋친 초목이 유난히 많은 지대여서 바농오름이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의 저자들도 바늘과 연관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지금까지 검색되는 이 오름의 지명은 반월악(半月岳), 반응악(盤凝岳), 반응악(盤應岳), 반응악(飯凝岳), 침악(針岳) 등 5개다. 이 중 최초의 표기는 반응악(盤凝岳)이다. 17세기 중반 정도 시기다. 이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도 반응악(盤應岳) 혹은 반응악(飯凝岳)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오랜 기간 '바능오름' 혹은 '바농오름'으로 발음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한자표기는 '바능'을 연음으로 보고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이 작명하는 방식


또한 표기에 채용한 한자가 각각 다른 점으로 볼 때 한자어가 아니라 고유어를 표기한 것으로 능히 추정된다. 침악(針岳)이란 '바능'을 바늘로 보고 훈독자 표기 방식으로 쓴 것이거나, 아니면 그저 발음을 '바능' 혹은 '바농'으로 한다는 점을 표기하기 위해 뜻과는 무관하게 훈가자 방식으로 표기한 것일 수도 있다.

늡서리오름. 건너편에 보이는 오름이 바농오름이다. 교래 입구에서 촬영. 김찬수

그다지 오래된 기록은 아니지만 100여 년 전인 1910년경 조선지지자료에 나오는 반월악(半月岳)은 음가자 '반(半)'과 음가자 '월(月)'의 결합어일 수 있다. 즉 '반올'이라는 발음을 표기하려고 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연음화하면 '바놀'이기 때문이다.

바능·바놀 같은 발음으로 나타나는 이 말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이 말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의 의미를 갖는 고대 북방어다. '큰'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아시아의 여러 언어에서 '불라'를 공통 어원으로 다양하게 파생했다. 퉁구스어의 공통 어원은 '풀-'인데, 오로크어에서 '풀루'라 하고, 여타의 언어에서는 다소 멀어진다. 몽골어권에서는 원시 몽골어 '불-'을 공통 어원으로 분화했다. 할하어 '불르', 부리야트어 '불라' 혹은 '불루', 칼미크어 '불러'에 대응한다. 제주어로는 '불룩하다'가 가장 근사하다. '불룩이' 혹은 '부룩이'는 '불룩하게'라는 말인데 어원상 '불'이 어간이다. 일본어에서는 고일본어에서 '바라-(ばら-)', 현대 도쿄어에서 '하라-(はら-)'로 나타나는데, '부어오르게 하다'의 뜻으로 쓴다.

'바리메'의 '바리', 붉은오름, 흙붉은오름, 밝은오름 등에서 '붉은', '밝은'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불'의 고어형이 '발'이고, 그 연음이 '바라다. 여기서 나타난 변음의 하나가 '바랄'이며, 이 말은 다시 '바랄'이 되거나 여기서 'ㄹ' 탈락 등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바나'로도 되고 '바날'로도 된다. 이 '바나', '바랄'과 '바날'이 제주어에서 '바농'으로 실현되는 건 맞다. 이 말은 발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바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래의 뜻은 점차 잊고, 사용 빈도가 높은 말의 뜻을 자꾸만 연상하기 마련이다.



불룩한 바농오름, 낮은 늡서리오름


바늘을 오늘날 제주어에서 바농이라 한다. 바농의 중세어는 바나, 바날, 바랄이다. 바날은 1608년 언해두창집요에 나온다. 바랄은 17세기 마경언해에 나온다. 바나는 1677년 박통사언해에 나온다. 바늘은 1676년 첩해신어 초간본에 처음으로 나온다. 바농이란 말은 고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제주도에서는 '바늘'의 의미로 '바농'을 쓴다. 그렇다고 해서 '불룩한'의 어원과 '바늘'의 어원이 같은 건 아니다. 이런 혼란 때문에 이 오름에서 자꾸만 바늘을 찾는 것이다.

오름의 지명해독엔 고려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중 인접한 오름의 분포 역시 중요하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바로 옆에 족은지그리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바농오름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한편 바농오름 남동쪽에는 돌문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건너에 낮고 길게 누워 있는 오름이 있다. 늡서리오름이다. '오름 나그네'에서도 '제주의 오름'에서도 늡서리오름이라 쓴다. 네이버 지도에는 늉서리오름, 카카오맵에는 늪서리오름으로 표기했다. 이 지명에 대해 '늡' 등의 음성형은 '눕-'[臥]의 변음일 것으로 추정한 책이 있다. 그러면서 '늡서리'의 '서리'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서리'란 '수리'의 변음이다. 즉 봉우리라는 뜻이다. 본 기획에서 여러 차례 다뤘다. '늡'이나 간혹 '늦'으로도 나타나는 이 발음은 '낮'의 고어형이다. '눕다'가 아니라 '낮다'의 뜻이다. 은월봉과 느조리오름 편 등에서 참조할 수 있다.

늡서리오름이란 낮은 봉우리란 뜻이다. 바농오름이 불룩 솟은 오름인데 비해서 이 오름은 낮은 오름이라는 뜻이니 서로 대비지명이 되는 셈이다. 바농오름에서 바늘 찾기 식 지명해독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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