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6] 3부 오름-(145)누운오름과 노루손이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86] 3부 오름-(145)누운오름과 노루손이
‘산맥처럼 긴 봉우리’가 ‘노루를 쏘던 오름’으로 둔갑
  • 입력 : 2026. 09.01(화) 03:00
  • 김찬수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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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닮았다’ 식 해석

[한라일보] 누웠다는 오름이 있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소재 표고 407m, 자체높이 57m의 오름이다. '눈오름' 혹은 '누운오름'이라고 불린다. 분화구에서 보면 오른쪽(남서 방향)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고, 여기서 왼쪽(북동 방향)으로 길게 돼 있는 것이 마치 산맥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지형은 이 화산체의 외륜 중 일부분이다. 낮고 완만한 언덕 정도로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높이가 20~50m에 불과할 것이다.

남서쪽 봉우리를 머리로 하여 넙적스름히 누워있는 형태여서 붙은 이름이 누운오름이며, 그에 따라 한자 표기도 와악(臥岳)이라 했다는 설명이 있다. 제주도 발간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남서쪽 봉우리를 머리로 하여 소가 누워 있는 형태라 누운오름이라고 한다고 했다. 같은 내용인데 '소'가 덧붙었다.

누운오름. 동쪽 정물오름 정상에서 촬영.



이 오름 지명에 대한 첫 기록은 일제강점기 지도로 보인다. 이 지도에는 설악(雪岳)으로 표기됐다. 1954년에 나온 증보 탐라지라는 책에도 같다.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고유지명(고산명)으로 눈오름, 한자표기(현 산명)로 설악(雪岳)이라 했다. 지역에서는 설악(雪岳)이라거나 와악(臥岳)이라 쓰는 것으로 채록됐다.

문헌에는 설악(雪岳)이라 일관되게 나온다. '눈 설(雪)'자이므로 훈가자 차자 방식으로 쓴 것이다. 그저 발음이 '눈'임을 표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저자들은 모두 와악(臥岳)이라 한다. 이 '와악'이라는 표기는 지역의 일부 묘비에만 나오는데 왜 이렇게 따라 쓰는 것인가?

누워있는 형태라면서 이름을 와악(臥岳)이라 주장한 책은 1995년 '오름나그네', 1997년 '제주의 오름', 2007년 '제주도 오롬 이름의 종합적 연구' 등이다. 이런 내용은 인터넷 사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자료에 그대로 인용됐다. 이 외에 애월읍 봉성리 눈오름, 애월읍 장전리 눈오름 혹은 누운오름, 애월읍 유수암리 눈오름, 노형동 누운오름 혹은 눈오름도 유사한 사례로, 모두 누워 있다는 데서 와악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을 닮았다' 식 해석이다.



북방어를 쓰던 언어사회의 잔영

'노리손이'라고 불리는 오름이 있다. 제주시 봉개동 소재 표고 426.6m, 자체높이 52m의 오름이다. 이 오름 지명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악(獐岳)으로 나온다. 1653년 탐라지에도 역시 같은 표기로 나오고, 1709년 탐라지도에 동장손(東獐孫)으로 표기돼 '노리손이'를 나타내려 했다. 17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삼읍도총지도에 노로손리(老路孫里), 이후 100년 정도 지난 1872년 제주삼읍전도에 노로손악(怒路孫岳)으로 표기했다. 1899년 제주군읍지에 녹악(鹿岳)으로 표기됐으며, 1965년 '제주도'는 고산명으로 노루손이, 한자명으로 장악(獐岳)이라 했다.

노루손이. 북서쪽 칡오름에서 촬영. 뒤에 오른쪽부터 개오리, 거친오름, 민오름이 보인다. 김찬수



이에 대해 옛날 노루를 쏘던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렇게 설명하는 이는 '노로' 혹은 '노리'라는 말에서 짐승 노루를 연상하고 '손이'라는 말에서 '쏘다'라는 말을 연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노로오름 혹은 노리오름을 노루가 많이 살던 오름, 애월읍 유수암리 노로오름 혹은 노리오름을 노루를 닮았거나 노루가 많이 살던 오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 외 여러 책에 공통으로 나온다. 모두 '~을 닮았다'거나 '제주방언에 비슷한 말이 있으므로 그렇다' 식의 해석이다. 여기서 '손이'는 '쏘다'라는 말에서 온 말이 아니라 '수리'의 준말 '쉬'에서 나온 말이다. 본 기획 다랑쉬오름, 걸세오름, 어승생 편 등에서 참조할 수 있다.

그럼 누운오름 혹은 눈오름 그리고 노루오름 등은 무슨 말인가? 몽골어에 '누루우(нуруу)'라는 단어가 있다. 산맥, 산등성이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등이나 척추라는 뜻으로도 쓴다. 지형에서는 산등성이처럼 길쭉하게 솟은 부분을 지시한다. 다소 울퉁불퉁할 수는 있어도 기다랗게 등성이가 이어진 지형을 흔히 이렇게 말한다. 뜻으로 볼 때 우리 국어에서 가장 대응이 될 만한 말은 산맥일 것이다. 트랜스유라시아어에서 다양하게 분화했지만, 특히 몽골어권에서 '누루우', '누르' 혹은 현지음으로 '노르'라고 들린다. 제주도에도 한때 이런 말을 쓰던 언어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능히 추정할 수 있다.



누운오름과 노루손이는 같은 말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노로오름이 바로 여기서 기원한다. 이 말은 'ㄹ'이 탈락하면 '누-' 혹은 '노-'가 될 것이다. 눈오름 혹은 누운오름이 바로 이 말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위가 평평하면서도 유난히 길다. 따라서 눈오름과 노로오름, 그리고 노리손이 등은 같은 말이다. 위가 평평하면서도 산맥처럼 긴 오름을 지시한다.

오름의 지명 해독에서 이런 오류가 흔하다. 제주도 오름 지명해석 양상을 보면 현재 지명이 있고, 여기서 비슷한 현대어를 찾아내 현재 지형과 사물의 유사성을 발견해, 이것을 근거로 과거의 명명 동기를 역추정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런 방식을 형상유추설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 지명의 음형과 현대 제주어 또는 한국어의 특정 어휘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어휘의 의미를 지명의 본래 의미로 소급해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손이'를 '쏘다'에서 온 말로 해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을 음성유추설이라고 한다.

지명의 해독은 오늘날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명명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반영한 언어 형태의 뜻을 밝히는 일이다. 대체로 '높다', '낮다', '길다', '좁다', '골짜기', '봉우리', '바위', '벼랑', '구멍' 등을 의미하는 당시의 어휘가 지명소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지형·수문·지질적 특징이 지명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국제 지명학에서도 확인된다. '산맥처럼 긴 봉우리'가 '노루를 쏘던 오름'으로 바뀌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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