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고구려어와 만주어 공통
[한라일보] 외로워서 독자봉이라 한다는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표고 159.3m, 자체높이 79m의 오름이다.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는 홀로 떨어져 있어 외롭게 보인다 해 붙여진 이름으로 독자봉이 있는 마을에 독자가 많은 것도 이 오름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고 써 놓았다.
15세기 세종실록에는 악사기(岳沙只)라 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음사기악(吾音沙只岳)으로 나온다. 이후의 고전에는 독자(獨子), 독재봉수(獨才) 등으로 표기했다. 이색적이게도 1703년 탐라순력도 등 18~19세기의 여러 기록에서는 패자봉(犻子烽)으로 기록했다. 이후 1864년경 대동지지 등에는 다시 독자악(獨子岳), 독자봉(獨子峯)으로 표기했다.
중세 우리 국어에서 '골(谷)', '골짜기', '깊은 구멍'을 지시하는 뜻으로 '골'이 쓰였다. 그런데 이 '골'이라는 말이 'ㄹ' 탈락으로 'ᄀᆞ' 혹은 '괴'로 변음하고, '개'로도 나타난다. '패자봉(犻子烽)'이라 한 것은 '패(犻)'의 훈 '성낼 개 모양'임을 감안해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골'의 변음 'ᄀᆞ' 혹은 '괴'를 표기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골'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 '골'이라는 발음이 이전에는 '홀로(holo)'의 형태였다. 이 말은 고구려 지명에 '홀(忽)'로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 '성(城)'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말은 발음 자체도 '성(城)'이라거나 이 한자 '성(城)'의 훈독인 'ᄌᆞ' 혹은 '잣'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홀(忽)'계 지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북해도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돼 있다. 또한 만주어에서 산 혹은 곡을 지시하는 '홀로(holo)'와도 직접 대응을 이루고 있다. 고구려의 지명 요소인 '홀(忽)'은 후기 중세어의 '골'과 대응되며, 어말모음 탈락현상으로 'holo>xolo>kol'의 음운변화 과정을 밟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오늘날의 발음으로 본다면 고구려어 '골'을 고구려어에서는 '호로(홀)'라 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봉, 이 오름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낮고 등성마루가 긴 모습이다. 통오름 입구에서 촬영
독자봉, 깊은 구멍이 있는 오름
독자봉(獨子봉)이란 '독(獨)+자(ᄌᆞ)+봉'의 구조다. '자(ᄌᆞ)'란 제주도의 지명에서 'ᄆᆞ로 지(旨)'에서 기원한 지명어다. 손지오름, 모지오름, 저지오름, 지미봉 등의 '지'에서도 공통으로 보인다. ᄆᆞ르 즉, 등성마루가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이 독자봉의 지명으로 고전에 처음 등장하는 '악사기(岳沙只)'라는 표기는 어떠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오름삿기'라고 단정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沙(사)'자는 그냥 음가자로 읽어서 '삿'이라 넘어가도 되는 글자는 아닌 것 같다. 바로 '모래 사' 자이므로 훈가자로 차자했다고 보면 'ᄆᆞ르'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봉'의 '자'를 표현한 글자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렇게 본다면 '악사기(岳沙只)'라는 표기는 '오름 모래기'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모래기'라는 지명은 도내에 산재하는데 안덕면 상천은 옛 지명 '모록밧'으로 유명하다.
세종실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유별나게 오름이라는 뜻의 '악(岳)'을 앞에 덧붙인 것은 흔히 모레기는 주위에 비해서 다소 높으면서 위가 평평한 지형을 지시하는데 이곳은 분명한 오름 지형이므로 이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오름, 이 계곡은 주변 지형으로 볼 때 침식보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김찬수
'독(獨)'이란 어디서 왔나? 이 글자는 '홀로 독'자다. 이 지명을 채록할 당시 '호로ᄆᆞ르'라거나 '홀ᄆᆞ르'라 했다면 '호로' 혹은 '홀'을 표현하기 위해 썼을 것이다. 훈가자 차자 방식에 속한다.
이 오름 동측에는 '덤붕개굴'이라는 용암동굴이 있다. 난산리의 역사문화지에는 '돔방궤', '돔방궤굴', '저슬굴'이라고도 한다고 나온다. 입구가 수직으로 8m 정도 깊게 내려간다는 정도이지 자세한 규모는 알 수 없다. 이 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용암동굴이다. 깊은 구멍이다. 독자봉이란 여기에서 기원하는 지명이다. 즉, 깊은 구멍 혹은 굴이 있는 ᄆᆞ르라는 뜻이다.
통오름, 계곡이 있는 오름
그 바로 옆에는 통오름이 있다. 이 오름의 지명으로 해서 독자봉이 '깊은 구멍이 있는 ᄆᆞ르'임을 실감할 수 있다. 통오름은 성산읍 난산리, 표고 143.1m, 자체높이 43m다. 이 오름의 형태가 마치 물통과 같이 움푹 팬 형태라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 책이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1872년 제주삼읍전도를 비롯한 대부분 고전에서 통악(桶岳) 등으로 표기했다. '통(桶)'은 '통 통'자라 한다. 물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통을 지시한다. 음도 통이고 훈도 통이다. 그러나 이걸 훈으로 읽는다면 물건을 담는 통이란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음가자로 읽는다면 이 뜻과는 관련이 없이 그저 발음을 '통'이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오름이 물건을 담는 통과 같다는 뜻이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주장은 개인적 느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이 오름엔 계곡이 형성돼 있다. 이 계곡은 다른 계곡과 이어져 있지 않다. 마치 이 오름의 부속 지형처럼 느껴진다. 계곡을 고대어로 '통'이라 한다. 주로 'ᄐᆞᆫ'이나 '돈'의 형태로 나타난다. 퉁구스어로 '텅', 투르크어로 '텡', 일본어로는 '다니'로 남아 있다. 특이한 점은 이런 말이 한반도에서는 남아 있지 않은데, 고구려어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어권의 언어를 사용했던 사회가 제주도에 있었다는 언어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 한반도에는 '골'이라는 말이 이에 대응하는데, 퉁구스어 골라, 몽골어 '고울', 투르크어 '굴', 일본어 '구라'가 대응한다. 인접한 독자봉과 통오름, 하나는 굴이 있는 오름이고, 또 하나는 계곡이 있는 오름이다. 지명해석에는 언어의 지층과 확산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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