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숙의 한라시론] 피해자 보호를 넘어 피해자 권리보장의 책임 묻기

[민무숙의 한라시론] 피해자 보호를 넘어 피해자 권리보장의 책임 묻기
  • 입력 : 2022. 12.08(목)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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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의 여성폭력추방주간이 끝났다. 올해 가장 큰 이슈는 시행 일년을 맞은 스토킹처벌법의 효과와 문제들이었다. 상대 여성뿐 아니라 그 어머니까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22년간 잠자고 있던 스토킹처벌법이 단 20일 만에 국회를 넘은 것이 작년 10월이었다. 그러나 서둘러 먹는 밥이 체한다고 스토킹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 법이 제정되고 알려지기 시작하자 스토킹에 대한 신고는 급증했다. 법 시행 전 10개월간(2021년 1월~10월) 112신고는 총 6971건이었으나 법 시행 후(2021년 10월~2022년 9월) 2만9156건으로 증가했다. 1일 평균 신고건수가 23.8건에서 84.5건으로 약 3.6배 증가한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피해를 감수하며 견뎠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의 80.7%가 여성으로 나타나 성별에 기반한 여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보인다.

제주도의 경우 동 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인구 10만 명당 범죄 발생률이 전국 3위를 차지하는 등 매일 평균 1.3건의 스토킹범죄가 발생했다(제주경찰청).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여성긴급전화1366 및 도내 상담시설 12개소를 통한 스토킹 상담은 127건으로 집계됐는데 지난 한 해 상담건수(132건)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동 법이 시행된 이후 스토킹이 단순 구애가 아니라 범죄라는 인식이 높아졌고 신고도 증가했지만 신당역 살인사건같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함으로써 동 법의 문제점이 여실히 노출됐다.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접근 여부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의 미비로 법원 선고 하루 전 피해자의 동선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됐고 이어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또한 반의사 불벌죄 규정으로 인해 가해자가 합의를 빌미로 고소 취하를 강요하거나 2차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피해자 보호나 처벌강화 등 여러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소극적 보호의 관점을 뛰어넘어 그들의 권리보장의 관점을 정책 전반에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전학을 가야 하고, 가정폭력 피해자가 쉼터로 도망가야 하고, 성폭력 피해자가 직장을 관둬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보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표피적인 탓이 크다. 수사 및 기소 등 사건처리 전 과정에 걸쳐 가해자에 대한 동정과 감정이입이 피해자의 기본권과 생존권에 대한 인식을 압도한 결과 피해자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고 개인적 대응으로 맞서다가 포기하거나 비극적 사태를 맞곤 한다.

한국이 세계 10위안에 드는 강국이라고 하지만 안전에 대한 권리보장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시정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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