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1] 2부 한라산-(17)그 뜻을 알 수 없는 ‘물장오리오름’ 이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1] 2부 한라산-(17)그 뜻을 알 수 없는 ‘물장오리오름’ 이름
‘물장오리오름’ 고대인이 새겨넣은 수천 년의 타임캡슐
  • 입력 : 2022. 12.20(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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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 무슨 말일까?

[한라일보] 백록담의 '록(鹿)'은 '노르'를 동물 노루로 알고 한자를 빌려 쓴 훈독자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록(鹿)'이라 쓰고 '노르'라 읽으라는 뜻이다. 지명에서 어느 한 곳에만 유별나게 쓰는 말은 별로 없다. 호수를 노르라고 했다면 그런 용례가 어딘가에 또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실 노르라는 말은 아주 다양하게 파생했다. 같은 의미로 쓰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도 썼다. 그렇다면 호수를 지시하는 말로 쓴 사례를 우선 찾아보자.

'물장오리오름'이라는 오름이 있다. 산정에는 직경 260∼290m, 깊이 2∼58m의 원형 분화구가 형성돼 있으며, 분화구에 물이 고여 최대 직경 140m, 수면적 1.06㏊의 타원형 호수가 만들어져 있다. 이 물장오리오름의 산정 화구호는 2008년 람사르협약 습지, 2009년에는 화산체를 중심으로 61만471㎡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 '제주 물장오리오름'이라는 명칭으로 2010년 10월 28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문제는 이 오름의 이름이 무슨 말인가 하는 점이다. '물'은 짐작이 된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럼 이제부터 수천 년 전 고대인이 묻어 놓은 물장오리오름의 타임캡슐을 열어 보자.

물장오리오름

우선 '오름'이라는 말의 정체부터 짚어보자. 사실 제주도를 이야기하면서 오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 내에는 무려 40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오름은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모두가 원형으로 됐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듯 모양이 가지각색일 뿐만 아니라 보는 방향이나 높이에 따라서도 아주 이색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오름이란 '오르다'의 명사형?

과연 이 '오름'이 무슨 말일까? 하긴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은 예상외로 드물다. 그냥 당연히 '오르다'의 명사형이겠거니 하고 지나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1997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 나오는 설명이다. '오름이란 제주 화산도 상에 산재해 있는 기생화산구를 말한다. 즉, 오름의 어원은 자그마한 산을 말하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한라산체의 산록 상에서 만들어진 개개의 분화구를 갖는 소화산체를 의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을 일컫는다.'

물장오리오름

제주도·제주발전연구원의 보고서 '제주 오름의 보전·관리방안'에는 오름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제외한 제주도 일원에 분포하는 소화산체로 화구를 갖고 있으면서 화산분출물에 의해 형성된 독립화산체 또는 기생화산체'로 정의했다.

모두 지질학적으로 정의하려고 애쓴 것이지만 어쨌거나 제주도 사람들은 자그마한 산 또는 분화구가 있는 소화산체를 오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큰 산이나 높은 산을 제주어로 달리 부르는 말이 있을까? '조그마한 산'을 말한다면 '큼지막한 산'은 무엇이라고 하나? '소화산체'가 아닌 '대화산체'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어째서 제주도 사람들은 산이나 봉이라고 하지 않고 '오름'이라고 할까?

오름이란 분화구 있는 자그마한 산?
물장오리오름에 담으려 했던 뜻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산'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또는 '산소'로 풀이하고 있다. '봉'은 산봉우리(산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은 부분)라고 풀었다. 산의 이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소는 단연 '산'이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금강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봉'도 많이 쓴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두산 다음으로 높은 산은 관모봉이다. 해발고도가 2541m나 된다. 성인봉은 울릉도에 있는 해발고도 982m에 달하는 산이다. 그 외에도 가리봉(1519m), 두위봉(1466m), 금대봉(1418m), 단지봉(1327m) 등 많다. 원래는 '봉'이었을 것인데 운율 상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산'을 중첩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산 이름도 있다. 점봉산(1424m), 매봉산(1303m), 응봉산(999.7m) 등이다. 그런데도 대체로 '봉'으로 끝나는 산은 큰 산을 이루는 여러 개 중 개개의 봉우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백두산 천지 주변에는 여러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데 대체로 병사봉, 백운봉, 관면봉, 삼기봉, 천활봉, 지반봉, 옥주봉, 제운봉, 와호봉, 고준봉, 자하봉, 화개봉, 철병봉, 용문봉, 관일봉, 금병봉 등 16봉으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최고봉인 병사봉을 장군봉 또는 백두봉이라고도 한다.

또 산 이름으로 '악'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악'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산'을 중첩한 형태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설악산(1708.1m), 화악산(1468,m), 치악산(1282m), 월악산(1095.3m), 관악산(632.2m)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악'을 한자표기로는 관악산(冠岳山)과 설악산(雪嶽山)에서처럼 다르게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문화와 한자'라는 책에는 '악'을 악(岳)과 악(嶽) 둘 다 '큰 산 악'이라 하고 이 두 글자를 병기했다. 같이 쓰는 글자라는 것이다. 갑골문의 '(嶽)'은 마치 산 위에 또 다른 산이 있는 듯한데, 매우 높은 산을 뜻한다고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400여 개의 오름 중에서 그 이름에 '악(嶽)'이 들어있는 것은 없다. 악으로 끝나는 이름이라면 하나 같이 '악(岳)'으로 돼있다. 그래도 이 두 글자는 같은 뜻을 갖는다고 하니 '큰 산'의 뜻이어야 하는데 제주도의 오름을 '큰 산'으로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주도에 도달한 고대인들은 왜 '물장오리오름' 같은 어려운 이름을 썼단 말인가? 그들은 무슨 얘기를 남기고자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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