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시장 선거에 출마한 농인 후보에게 한 유권자가 묻는다. "내 고속 인터넷은 어떻게 해줄 생각인가?" 이에 후보자가 수어로 답한다. "아무것도 안 해. 자네 농장은 서버에서 2km 넘게 떨어져 있지 않나. 고속 인터넷을 원하면 이사하라고." 후보는 거기다 이런 말을 덧붙인다. 현직 시장이 버릇을 잘못 들였다고, 이 자리는 시의 발전을 위해 마련된 것인지 고객 상담을 위한 게 아니라고.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의 한 장면이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3관왕을 차지한 '코다'의 원작이 된 프랑스 영화다. 음악을 매개로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청인 자녀의 성장기에 무게를 둔 작품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가 가족 소유 농지와 숲을 망치려는 현 시장의 산업지구 조성 계획을 막겠다며 선거에 뛰어들어 비장애인과 경쟁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실화에 기반해 픽션을 버무린 그 영화가 떠오른 건 지난 14일 제주도지사의 제주시 연두 방문에서다. 이튿날 서귀포시를 포함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두 행정시에서 열린 '시민과의 대화'였다. 제주시의 경우엔 각 부서를 통해 1차 산업 종사자에서 예술인까지 200명이 초청됐다.
지난 한 해 제주도 홈페이지 '도지사에 바란다'를 통해 500건 가까운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도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온·오프라인 창구가 늘면서 연두 방문을 구태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문답하는 '시민과의 대화'를 바라는 이들도 보였다. 실제 제주시 연두 방문에 참석했던 한 자영업자는 업계 애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2019년부터 제주도지사 면담을 요청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이번엔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마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꼭 하고 싶었던 말은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제주시 연두 방문의 질문자는 총 19명으로 29건의 의견이 모였다. 주최 측이 질문을 하겠다며 손을 든 사람들에게 모두 기회를 줬다고 해도 그렇게 아쉬움은 남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나온 여러 말들이 어떻게 처리되고 실행되는지다. 그런 점에서 제주시가 올해 '시민과의 대화'에 앞서 진행한 제주시장의 26개 읍·면·동 연두 방문의 형식을 바꾼 것은 주목된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현재 관리 중인 최근 3년간의 읍·면·동 방문에서 제기된 1768건의 건의 사항에 대해 처리 현황을 설명한 뒤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그랬더니 매년 300건에 달했던 연두 방문 건의 사항이 올해는 25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읍·면·동별로 1건 정도인 셈인데 향후 매번 반복되는 질문과 요구 사항 대신에 지역 현안에 집중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장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다시 '미라클 벨리에'로 돌아가 보자. 소견 발표장에서 유권자와 각을 세우는 농인 후보에 대해 청중들이 곧바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영화 말미엔 예상을 깨는 듯한 화면이 등장한다. 우리의 '시민과의 대화'에서도 소신을 지키며 소통하는 위정자가 필요하다. <진선희 행정사회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