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3] 2부 한라산-(29)부악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3] 2부 한라산-(29)부악
부악이란 '가마+오름'인가, '가+메+오름'인가
  • 입력 : 2023. 03.21(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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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처럼 생긴 건 여러가지다




[한라일보] '괘릉', 신라 원성왕릉의 봉분, 석상 및 석주. '괘릉'이란 '왕릉'의 뜻이다. 사진 오른쪽은 원성왕릉 진입로.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釜岳)

부악(釜岳)이란 가마오름이라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부(釜)는 '가마 부'라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가마를 '가메'라 한다. 그러므로 처음 '가메오름'이라고 들은 입장에서는 '가마오름'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말 기준으로 '가메'와 '가마'는 차이가 있다.

가마오름은 '가마+오름'으로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이건 단순히 가마 같은 오름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고, 여러 종류의 가마 중 어떤 가마인가를 확인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가메오름은 '가메+오름'인가, '가+메+오름'인가를 다시 분석해 봐야 한다. 그중에서 '가메'란 무엇이고, '가', '메'는 각각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가마'란 무엇인가? 가마, 가메, 가매 모두 같은 발음이라는 걸 전제해 보자. 다만 대표를 가마라 하자.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들은 경우에 따라 가마솥, 조그만 집 모양의 탈것, 벽돌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 머리 꼭대기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된 부분이 있다. 이중 제주어에서 한라산과 관련해 상정할 수 있는 내용은 가마솥과 머리 꼭대기 소용돌이 모양일 것이다. 가마솥을 나타내는 '가마'를 제주도 고대인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몽골어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 몽골어에서도 이와 유사한 음은 확인할 수 없다. 몽골어에서 솥은 '토구'라 한다. 제주도에는 유사한 발음으로 '도구리' 혹은 '도고리'라는 생활 용구가 있다. 이 '도구리'도 백록담과 굳이 비유하자면 충분히 가능한 모양이긴 하다. 돌궐어권에서도 볼 수 있다. 원돌궐어에 '케멕케'가 난로 혹은 난로 구멍을 의미한다. 키르기스어 '케메게', 카카스어어 '키메게', 오이라트어 '케메게'로 나타난다. 일본어에서도 볼 수 있다. 원일본어에서 '가마'가 난로 혹은 솥을 의미한다. 일본 고어 '가마' 혹은 '가마두워', 중세 일본어 '가마'로 나타난다. 현대 일본어에도 '가마'로 승계됐다. 우리 국어에서는 '가마' 혹은 '가매'가 솥을 의미한다. 제주어로는 '가메'다. 돌궐어에서처럼 솥이 아니더라도 유사한 형태는 있을 수 있다. 화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니 반드시 솥과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대 제주어 '가메'는 솥을 나타내지만 고대어에서도 같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라산을 지칭하는 가메오름을 솥과 직접 대응시키기는 무리다.



'가메'란 정수리·머리 꼭대기


'가메'는 또한 정수리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해부학적인 의미 외에도 '머리 꼭대기',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알타이 제어에 '키암파'는 '꼭대기' 혹은 '머리 꼭대기'의 뜻으로 쓴다. 원퉁구스어에 '개마' 혹은 '개파'는 관자놀이 혹은 얼굴이다.

원돌궐어에서는 '카막' 또는 '카박'이 앞머리, 앞, 눈꺼풀, 눈썹으로 쓴다. 원일본어 '갬프'는 꼭대기, 머리를 의미한다. 일본 고어 '카미'는 꼭대기, 중세 일본어 카미(kami)는 꼭대기, 카부리(kabu(ri)는 머리를 지시한다.

우리말에서도 중세어 '가메'는 정수리를 의미하고, 오늘날의 가마에 해당한다. 한라산을 가메오름 혹은 가마오름이라고 부를 때 '가메+오름' 혹은 '가마+오름'의 구조로 본다면 '꼭대기 오름'이라는 의미가 된다. 백두산의 옛 이름 '개마산'은 역시 이와 어원을 공유하여 '꼭대기의 산'이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본다면 '두무오름'이라고 부른 집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해진다.

'가+메+오름'이라면 어떻게 되나? '가+메'를 가메오름이라 말했을 수 있다. 즉, '메'는 뫼 혹은 오름을 지시할 수도 있으므로 가메오름이란 '가+오름+오름'이 되는 것이다. 흔히 산의 이름은 한라산, 백두산처럼 3음절로 쓴다. 혹은 두무오름, 성널오름처럼 4음절로 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이처럼 3~4음절로 쓰는 것이 보통이므로 '가메'라고만 해야 할 것을 '가메오름'이라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하는 사람은 '가메'라고 했는데 듣는 사람이 '가메오름'이라고 적었을 수도 있다.



'가+메'는 아이누어 '꼭대기의 산'


'가+메'일 경우 '메'는 산을 의미한다고 보면 '가'가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핵심이다. 문제는 '가메'의 '가'의 기원이 그리 간단치 않은 데 있다. 아이누어에서 '카'는 '(어떤 것의) 꼭대기'라는 뜻을 갖는다. 신라 왕릉 중에서 '괘릉'이 있다. 문화재청은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건 한자 뜻 자체의 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괘릉'의 '괘'는 '가+ 주격조사 ㅣ'의 구조다. '칸의 릉' 즉. '왕릉'의 뜻이다. 이 경우 '가+메'는 '꼭대기의 산'이라는 뜻이 된다. 마치 '두무오름'이 수많은 오름 중에 가장 높은 오름이라는 뜻과 대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봉우리를 두고 '두무오름'이라는 집단과 '가오름'이라고 한 집단이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알타이어에 '고사'를 어근으로 하는 몇 파생어가 있다. 모자, 우산 등을 지시한다. 이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동원어권을 형성한다. 그 외의 언어에서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원일본어에 '가사'는 우산을 나타낸다. 현대 일본어에서도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세에 '갓' 혹은 '갇'으로 나타난다. 현대에는 갓으로 쓰고 있다. 언어란 반드시 어떤 규칙에 따라 변화하고 파생하는 것이 아니다. '갓' 혹은 '갇'이 '오름' 혹은 '뫼'와 연결되면서 받침이 탈락하여 '가'로 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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