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논란이 뜨겁다. 2018년 대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 등 강제노역 피해자에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그런데 정부는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 대신 국내기업의 기부를 통한 피해자지원재단에서의 배상안을 발표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생존피해자들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야당을 주축으로 한 정치권과 시민단체 및 언론에서도 그 반대 파장은 커지는 추세다.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을 주도적으로 위로 치유해야 할 정부가 의견수렴도 없이 배상까지 자발적으로 해주는 것은 굴욕적 항복 외교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미쓰비시 임원진이 사과하고 미쓰비시로부터 배상도 받았는데 한국은 전범기업의 사죄나 배상에서 늘 제외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강제징용은 없다, 식민 지배도 합법적이다, 이제는 진실도 부인하는 한일 과거사 연장선상에 있지 않던가. 오히려 우리 정부가 민족적 자존과 국민의 아픔을 외면한 채 가해자 일본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당 관계자는 우호적 관계를 위해 강제동원 문제를 통 크게 양보한다면 일본도 성의 있는 답례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은 오롯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공언했고 보수층은 반일이 아닌 극일로 가야 한다며 옹호했다. 그러나 12년 만에 이루어진 한일정상회담에서 진전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자는 셔틀외교 합의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곤욕을 겪으며 조치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중단을 푼다는 것이 전부였다. 한국이 먼저 물컵에 반을 채웠으니 나머지는 일본이 채운다는 정부의 대국민 설득과 다르게 일본은 예전 내각의 입장과 변함이 없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공식적 사과는 차치하더라도 유감 표명이나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가 언급됐어야 그나마 우리 정부가 내세운 미래지향적 명분을 찾을 수가 있었을 텐데 공연히 한국이 먼저 나서 가만히 있는 일본에게 선물만 주고 온 셈이 되었다.
향후 벌어질 일들이 걱정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연이어 요구하지는 않을까. 그동안 방위백서를 통해 다케시마라고 주장해온 독도는 어떻게 해결하려 들 것인가. 혹여 우리 정부가 알아서 일괄타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3월이면 나는 늘 감사했다.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이룩한 지금의 대한민국, 그 의미를 되새기는 삼일절로 새봄을 열었다. 그런데 올해는 목사라는 사람이 버젓이 일장기를 게양하고, 현직 도지사는 친일파가 되겠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대통령 직속 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자신의 조국을 일제배상에 악쓰는 나라로 일갈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경제 상황에 막말로 나대는 지도층의 역사관에 걱정과 분노가 앞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법이다. 삶에 희망이 없어진다면 유순한 민중일지라도 저항만 남지 않겠는가.<허경자 (사)제주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