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우정의 끝
  • 입력 : 2023. 03.31(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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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한라일보] 매일 만나던 절친이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선언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마음은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새카맣게 얼룩져 타 들어간다. 우리가 왜, 당신이 왜 그리고 내가 왜. 대체 나만 모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치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한 한 남자는 이니셰린이라는 한적한 섬 안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 된다.

'킬러들의 도시'와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의 신작인 '이니셰린의 밴시'는 1923년 아일랜드의 외딴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멀리 떨어진 본토 아일랜드에서 진행 중인 내전의 총소리가 간간이 들려 오지만 마을은 대체로 평화롭다. 군데군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집들과 한적한 마을 길을 걷는 당나귀와 소들 또한 급한 구석이 없다. 일견 단조롭고 때론 무료하게도 느껴지는 이니셰린. 이곳에 사는 남자 파우릭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한량으로 보인다. 그의 유일한 루틴이자 삶의 낙으로 보이는 것은 오후 2시 단골 펍에서 친구 콜름을 만나 맥주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마치 단짝과 등교하는 것처럼 파우릭은 콜름과 언제나 함께다. 그랬던 콜름이 돌연 파우릭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다. 이제 네가 싫어졌다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살면서 누군가에게 '싫어졌다'는 말은 듣는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말은 '싫다'는 말보다 더 강력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찌른 뒤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상대가 그것을 이유로 헤어짐을 단언한다면 그때부터 한 사람의 일상은 지옥이 된다. 갑자기 드리운 거대한 먹구름에서 언제 멈출지 모를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마음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파우릭 역시 그렇다. 시쳇말로 쿨하게 콜름의 이별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콜름을 찾아가고 그의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쓴다. 내 친구의 집을 향하던 경쾌한 발걸음은 조바심으로 다급해지고 쿵쿵 대는 마음의 요동은 눈썹까지 출렁이게 만든다.

사랑이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것처럼 우정 역시 마찬가지다. 우정이라는 관계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복잡하기 그지없다. 친구가 되는 일, 친구로 사는 일은 평생 타인이라는 숙제를 껴안고 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화 속 두 친구의 관계는 잘 보여준다. 물론 파우릭의 속만큼이나 콜름의 속 또한 편할 리 만무하다. 어느 순간 친구의 다른 조각들을 보게 되고 그 조각들이 자꾸 거슬리게 되며 결국 그 친구와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챈 이의 고민 또한 작지 않았을 것이다. 콜름은 우리 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고 그러기엔 절대적으로 스스로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아마도 콜름은 구구절절 파우릭에게 자신의 나머지를 설명하는 일이 둘 사이의 절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차라리 희망 고문 없이 끝내려 했던 관계. 물론 그 또한 콜름이 원하는 대로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100년 전 섬 마을에 살던 이들의 대면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 관계를 마틴 맥도나는 흥미롭고 유려한 이야기 안에서 풀어낸다. 사회관계망 안에서 누군가를 블락하거나 뮤트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에 살던 이들은 기어이 스스로와 타인의 바닥 까지를 보고야 마는데 그 과정은 참혹할 정도로 절절하다. 정답도 해답도 없는 인간관계라는 난제를 두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파우릭과 콜름을 지켜보는 일은 한숨과 비명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지만 보다 보니 그들의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싸움의 시간들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린 관계들, 이유는 짐작하지만 끝내 내지 못한 용기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한 채 감정이 뒤섞인 비아냥으로 일관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그래 손절을 하려면 저 정도의 뜨거움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서슬 퍼렇게 번져가던 불길은 잿빛 재로 남는다. 다시는 전과 똑같은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 순간, 지난한 싸움의 끝에 해변에 나란히 선 두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갑작스러운 전쟁과 힘겹게 찾아온 평화, 모진 말들과 아픈 상처들이 고요한 파도 소리가 도착하는 곳에 뒤엉킨 해초처럼 당도한다. 참으로 지독하고 지난한, 해결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랬기에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갈 수 있었음을 파우릭과 콜름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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