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식목일에 나무와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무 의사 우종영 박사의 저서,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다. 나무는 거의 평생을 한자리에서 살면서 사랑을 먹고 자란다. 나무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이롭게 하는 흔적을 남긴다. 이름도 많고, 숫자도 많고, 저들마다 쓰임새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 제자리에서 제 특성에 맞게 자라면서 제 몫을 한다. 사람은 나무로부터 본받을 게 많다.
이동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잘 지켜야 할 자기 자리가 있다. 공동체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직위다. 마땅히 있을 만한 자리면 그게 그의 '제자리'다. 제자리에 있는 나무는 아래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건강하게 자란다. 자리를 잘 만난 사람은 나무와 반대로 자기가 토양이 돼 그곳을 성장시킨다.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임무와 역할을 잘하는 것, 그게 '제자리 지키기'다.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에 따르는 자격과 절차 그리고 식견과 능력이 필요하다. 가지고 태어났든, 만들었든, 받았든, 자리에는 책무가 꼭 있다. 부모와 자식, 배우자, 친구, 선후배 사이 등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혹은 선출이나 임명을 통해 얻은 자리에는 이행해야 할 본분이 있다.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자리를 차지하기부터 제구실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자리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과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은 된다는데 자기 일을 제대로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익보다 사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리와는 무관한 재주로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는 주위의 방임과 용인 때문에 가능하다. 역으로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들의 참견은 제자리를 벗어난 일로 자리 주인과 사회에 피해를 준다. 이들은 제 주제를 모르면서 정작 자기 본무는 그만큼 소홀히 하고 있음이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구실하는 그런 좋은 세상을 보고 싶다. 개인의 의식과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면 좋겠다. 대립과 싸움에 쓰이는 지략과 에너지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데 사용되면 좋겠다. 제자리 지키기를 돕는 사회적 풍토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나무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사람은 좋은 여건일수록 훌륭한 자원으로 큰다. 이런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는 정품들로 짜인 기계처럼 건실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때로는 뒷걸음을 치는 것만 같다.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 메타세쿼이아는 그 몸집에 부닥치는 바람을 견디기 위해 땅속에서 저들끼리 치열하게 뿌리를 얽어매고 엉켜서 서로 의지한다고 한다. 한갓 나무들도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은다. 나무 사회가 사람 사회보다 부러운 식목일이다.<이종실 제주시오라동단체장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