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포기의 반대말

[영화觀] 포기의 반대말
  • 입력 : 2023. 04.14(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리바운드'.

[한라일보] 스포츠 경기에는 오디션과는 다르게 심사위원이 없다. 관객들은 각 종목의 룰을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눈앞에 드러나는 승부를 판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시 말해 스포츠 경기는 세상의 많은 쇼들 중 가장 명백한 형태의 대결에 가깝다. 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지금 이 순간'을 의심 없이 목도한다. 스포츠를 직접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올림픽 시즌이 돌아오면 밤을 새워 경기를 시청하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낸다. 더 많이 사랑하는 이들은 직접 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과 사랑을 전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펼쳐지는 한 판의 승부가 주는 정직한 쾌감을 얻기 위해서다. 땀이 흥건한 무대 위의 긴장이 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경험, 수많은 데이터들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이변과 기적이 탄생하는 스포츠 경기의 결과는 이기고 지는 것, 승부를 내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2023년 상반기 한국 극장가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으로 뜨거웠다. 연초에 개봉한 이 작품은 4개월 이상 박스오피스 탑 5 안에 머물며 450만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봤던 이들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도 모두 하나같이 열광했다. 물론 이 작품의 방대한 서사를 다 알고 보는 일이 더 풍성한 감상의 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시간의 러닝 타임 안에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차곡차곡 배치했고 그 선택과 집중의 전략은 단일 작품 한 편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충분한 흥분과 감동을 안겼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이른바 '농놀'이라는 새로운 재미를 지금의 관객들에게 패스한 시점, 한국 극장가에는 '농구'를 소재로 한 각기 다른 매력의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바야흐로 '농구, 실화, 감동'의 키워드들이 스크린을 수놓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의 오랜 콤비 벤 에플렉과 맷 데이먼이 함께 '에어 조던'의 성공 신화 그 이전의 성공담을 영화로 만든 작품 '에어'. 덧붙일 말들이 필요하지 않은 '농구계의 전설' 마이클 조던과 거대 브랜드 나이키의 대표적인 라인 '에어 조던'. 영화 '에어'는 여전히 전 세계 매장에서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패셔너블한 스포티 웨어를 찾는 이들에게 각광받는 고유한 아이콘인 '에어 조던'이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에어'의 주인공은 무대 위 마이클 조던이 아니라 그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남자, 나이키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다. 나이키가 지금의 나이키가 아니던 시절, 소니는 나이키의 새로운 얼굴로 라이징 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을 영입하고자 고심한다. 잘 그리고 찬찬히 들여다본 이의 눈과 마음을 가득 채운 누군가의 놀라운 가능성. 소니는 조던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뜨겁게 지켜본 타인이다. 타인에 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불안이 뒤엉킨 채로 소니는 조던을 향한 열렬한 구애 작전을 펼친다. 영화 '에어'는 소니가 그 순간들에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을 천천히 드리블한다. 모두가 '그는 당신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때에도 소니는 애정이 담긴 코트를 떠나지 않는다. 뚝심인지 짝사랑인지 모를 그의 마음 또한 스포츠 경기의 무언가와 닮아 있다. 그리고 자신 이상으로 조던을 잘 알고 있는 조던의 어머니 돌로레스를 만난 소니는 결정적인 슛을 날려야 할 타이밍을 알게 된다.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하늘 아래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을 잊지 않는다.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거짓말처럼 준우승을 거머쥐는, 교체 선수 없는 고교 농구팀의 이야기 '리바운드'는 초보 코치 강양현(안재홍)과 믿을 건 자신과 팀뿐인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말이 안 될 것 같은 순간들을 뚫고 지나가는 이들의 애정으로 채워진다. 누군가의 예측이나 스스로의 짐작으로는 불가능한 한계를 넘는 순간들이 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그 점프들은 경기 장면에서 뿐만이 아니다. 낯선 타인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팀이 된다는 것,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림처럼 슛이 성공 돼야 할 순간마다 이들에게 강력한 허들이 된다. 혼자서는 연습도 못하는 팀 스포츠에서,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코트 위에서 적대감과 의구심이 뒤엉킨 코트 밖에서 강양현 코치와 선수들은 튕겨 나오는 서로의 마음들을 부지런히 주워 다시 던진다. 고교 농구팀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만큼 영화 '리바운드'의 초반, 예선 경기 장면에서는 관중석이 비어있다. 누구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간절한 승리를 위해 코치와 선수들은 더 자주 많이 서로에게 마음을 꺼내 던진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수많은 이들의 일상에 자리 잡은 시점에 '리바운드'는 중요한 건 꺾여도 포기하지 않는 우리라는 부드럽고 다정한 양감을 선사하는 드라마다.

포기의 반대말은 도전일까 혹은 최선일까.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포기의 반대말은 포기하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아서 스스로가 아직 어떤 것도 끝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끝났다는 종료 신호 다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우리는 다음 경기를, 또 다를 나의 순간을 뛸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경우의 수는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미지수이다. 포기하지 않고 나쁜 수를 쓰지 않고 그 수를 찾고 싶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21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