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8] 2부 한라산-(34)한라(漢拏), 지난 542년간 뜻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8] 2부 한라산-(34)한라(漢拏), 지난 542년간 뜻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라(漢拏)'의 어원
  • 입력 : 2023. 04.25(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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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의 '하늘 산 유래설' 언어학적 접근과 거리

[한라일보] "한라라고 하는 것은 운한(雲漢, 은하수)을 나인(拏引, 잡아당김)할 만하기 때문이다(기왈한라자, 이운한가나인야; 其曰漢拏者, 以雲漢可拏引也)"라는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이다. 이 번역은 홍기표 박사의 논문 '우리나라 옛 문헌 소재 한라산 인식'에서 따온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에 편찬되었다. 542년 전의 일이다. 위 문장은 아직도 인용되고 또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니 명문장 중의 명문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라산이란 산 이름은 '운한가라(雲漢可拏)의 네 글자에서 나왔다'라는 것이다.

몽골 제국 초기 수도로 현대 몽골어로 하르허린(kharkhorin), 몽골비사에는 카라코룸(Qara qorum)으로 나오며, 카라는 돌궐 몽골계어로 '검다'를 나타낸다. 코룸은 '큰 성'으로 알려져 있으나, 돌궐계 언어로 '돌무더기' 혹은 '거대한 돌'의 뜻이다.

근세 이후 여기에 도전하는 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백양환민에 이어 한라산 지명유래를 풀이한 이가 노산 이은상(903~1982)이다. 1937년 조선일보사에서 펴낸 '탐라기행 한라산'이라는 책 관련 부분의 원문이다.

"동방의 오랜 민물(民物)이 '하날'에 모태를 두고 은총과 의지(依支) 아래서 세세대대로 전통되고 유포되어 온 것이며 하나로부터 백까지의 모든 자랑과 살아온 자취가 다만 '하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일체의 연원이오… 중략. 그러므로 나는 한라산의 이름을 본시 우리말로는 '하날산'이라 부르던 것으로 해석코저 하는 것이다. 고인(古人)은 '한라자이운한가라인야(漢拏者以雲漢可拏引也)'라 하여 운한을 만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지마는 물론 그것은 한자 이후에 그 한자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거니와 그 한자와 그 설명을 그대로 두고 볼지라도 거기 '하날'이란 원의(原意)를 볼 수 있음은 중언할 것 없다."

하칸출룬의 '몽골어 유래설' 주장이 모호

이은상은 산 이름 '한라'란 태곳적부터 신앙적으로나 대자연이라는 측면에서나 '하늘산'이라 했던 것이 한라산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봤다. 이런 해석은 언어학적 해석이라기보다 민족의식 고취라는 측면이 강하다. 태고 이래 신앙, 산악숭배 같은 제주도민의 습속을 거론했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국토예찬이 다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풀이도 학계에서 널리 수용하지 않는 실정이다. 어쩌면 그 세력이 미미하여 견고한 '운한가라'의 네 글자 아성을 허물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은상의 '탐라기행 한라산' 표지(재단법인 현담문고 제공)

1990년 몽골인 하칸출룬 교수는 '한라'의 어원에 대해서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한라란 검은 산의 의미라는 것이다. 제주 방언에는 이와 음성적으로 가까운 '-kara(검은색)'의 몽골어 차용인 '가라말(검은색 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 한(왕)과 같은 산이다. 몽골어에 '왕'의 뜻으로 사용되는 어형으로 한(khan) 등이 있다. 산 위에 호수가 있는 산, 그리고 한번 분출했다가 쉬고 있는 휴화산의 뜻도 있다는 것이다. 몽골어 대응어로는 이식쿨(iskel, 熱海)이 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어떤 것을 '한라'의 뜻으로 봤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즉, 이런 네 가지 뜻이 모두 담겼다는 것인지, 그 중 어느 하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류쥔거의 '검은 산 유래설' 논증 부족

이 와중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으니 류쥔궈(刘均国)라는 중국인 학자다. 그는 2015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라'라는 발음은 몽골어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몽골어의 '검은색'과 우리말 '한라'의 발음을 대비하여 한라산이란 이름은 결국 몽골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한라를 영어알파벳으로 표시하면 halla이고 몽골어 검은색은 hara(혹은 har)로 표시한다. 두 영문을 보면 쓰기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발음도 상당히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두 단어의 기원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자로 몽골어 검은색을 표기할 때 항상 哈日(hari) 혹은 哈拉(hara)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몽골 제국 초기 수도 이름 하르허린(哈拉和林)은 바로 '검은 성'이란 뜻이고 이것은 '크고 장엄한 성'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여기서 '하르'도 한국어 발음 '할라'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몽골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많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좋은 물'의 경우를 보면, 몽골어로 '물'을 '우수(wusu)'라 하고, '좋은'은 '사인(sain)'으로 발음한다. 제주도 말로 '어스사이(우스 사이엔)'다. 또 다른 예로 조랑말은 몽골에서도 작은 말을 '조로모리'라 하므로 역시 몽골어일 가능성이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는 한라의 영어알파벳 표기 halla와 몽골어 검은색 hara가 쓰기와 발음 모두 비슷하다고 해서 기원도 같다고 본 것이다. 이질적인 언어 사이에서 이런 사례가 꽤 발견될 수 있지만 이런 주장이 성립하려면 이 단어들의 변화형이나 파생형도 같아야 한다. 둘째는 한라산이 정상 일대 바위가 검은색인 건 맞지만 이것이 그렇게 독특한 것인지, 검은색이 산 이름에 반영될 만큼 제주도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제주도 말로 좋은 물을 '어스사이'라 한다는 것은 아마 어승생오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승생오름의 지명이 몽골어 '좋은 물'에서 유래했다고 확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조랑말의 경우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만으로 한라가 검은색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하기에는 미약하다. 넷째는 halla가 hara와 같은 뜻의 차용어임을 밝혀야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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